미국 샌프란시스코의 신생 벤처기업인 모멘텀머신은 최근 패스트푸드점용 로봇을 개발했다. 잘게 갈은 쇠고기 덩이에서 일부를 떼어내 햄버거용 고기를 만든 뒤 이를 굽고, 동시에 햄버거용 빵을 구운 뒤 토마토와 양파, 피클까지 넣어 햄버거를 완성해낼 수 있는 로봇이다. 이 로봇이 양산될 경우 패스트푸드점의 점원들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으리란 전망이 나온다.
기존에 사람이 하던 일을 현재도 일부 산업에서 로봇이 대체하고 있지만 앞으로 20년 안에 로봇의 역할이 급격하게 커질 것이란 보고서가 나왔다.
투자은행인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는 최근 30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로봇 보고서’를 발표하고 “향후 20년간 진행될 로봇 혁명은 증기기관과 대량생산, 전자산업에 이어 제4의 산업혁명을 일으키게 되고, 향후 글로벌 경제 판도를 완전히 뒤바꿔놓을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5일 전했다.
보고서는 영국 옥스포스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해 로봇 혁명으로 인해 향후 20년 동안 미국의 경우 기존에 사람이 맡아온 일자리의 47%, 영국은 35%가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현재 전 세계적으로 근로자 1만명 중 ‘로봇 근로자’는 66대 정도 배치돼 있지만 보고서는 “일본의 자동차업계처럼 도입 속도가 아주 빨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현재 근로자 1만명당 ‘로봇 근로자’가 1520대 배치돼 있다. 심지어 어떤 관리·감독 없이도 로봇 스스로 30일을 쉬지 않고 자동차 제조를 할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은 특히 패스트푸드업계와 제조업, 금융상담업무, 의사, 노인돌봄서비스 등에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에서는 외로움을 달랜다는 취지로 ‘록시’라는 이름의 섹스 로봇까지 생산되고 있다. 게다가 인공지능이 가미되면서 ‘판단하는 로봇’이 가능해져 금융상품 판매나 투자조언, 고객의 신용등급 분류, 심리상담 등을 로봇 근로자가 대신하게 될 전망이다.
이런 확산세에 힘입어 로봇 및 인공지능 시장은 2020년 1527억 달러(약 173조원)까지 커질 것으로 추산됐다. 보고서는 구글이 지난해에 로봇 및 인공지능 관련 기업 8곳을 사들인 것도 이런 시장 확대를 겨냥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인구의 노령화로 인해 노인돌봄서비스에 쓰이는 케어봇(Care-bot) 시장만 향후 5년 내 170억 달러(약 19조원)대로 커질 것이란 관측도 나왔다.
로봇 도입을 통해 생산성이 30% 이상 향상되는 등 비즈니스 환경 자체도 많이 달라질 전망이다. 보고서는 “현재 선진국 기업이 임금이 가장 낮은 다른 나라에 공장을 옮길 경우 전체 인건비의 최대 65%까지 줄일 수 있지만 로봇을 생산현장에 도입하면 인건비의 90%까지 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로봇의 확산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도 적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로봇이 투입돼 대체될 인력 대부분이 저임금 노동자나 아르바이트, 단순 노무직, 상담직, 돌봄서비스업 종사자 등이어서 지금도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직장에서 쫓겨날 경우 사회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많다. 아울러 무인 공격기나 섹스 로봇 도입 등으로 인한 윤리적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캐슬린 리처드슨 몽포르대 로봇윤리학 연구원은 4일(현지시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열린 웹 서밋에서 “로봇과의 성관계는 우리가 걱정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는 인간 존엄성을 잃어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영국의 싱크탱크 뉴웨더연구소의 앤드루 심스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로봇 혁명으로 경제학자 케인스가 1930년대에 전망한 ‘1주일에 15시간 노동시대’가 실현될 수 있겠지만 그와 동시에 양극화 문제 등까지 포함해 ‘우리는 과연 어떤 경제 시스템을 원하는가’에 대한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로봇의 빛과 그림자] ‘로봇 혁명’ 환호 뒤엔… 노동자 일자리 47% 잃는다
입력 2015-11-05 21: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