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얼마어치 샀습네까?” 北세관원이 영수증 검사한 이유

입력 2015-11-05 21:59 수정 2015-11-06 22:18
(1)평양 대동강구역 해당화관 6층 커피점 조명 메뉴판에 소개된 아이스 카푸치노. ‘얼음을 둔 카푸치노’로 표기돼 있다. (2)‘겹과자’로 소개된 북한판 ‘샌드’.(3)북한판 초코칩 쿠키 ‘쵸콜레트 과자’. (4)평양호텔 ‘전망대커피점’에서 판매 중인 모카라떼 커피.(5)전망대커피점에서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여종업원. 베레모와 복장이 우리 커피전문점 종업원을 방불케 한다. (6)평양 대동강구역 ‘문수물놀이장’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생맥주를 마시는 평양 시민들. 출처=유튜브, 조선신보 등
지난달 26일 강원도 고성군 북측 출입사무소(CIQ).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마친 우리 측 2차 상봉단이 남측으로 돌아오기 위해 북한 세관을 거치고 있었다. 우리 측 가족 A씨는 숙소인 외금강호텔 1층 기념품 가게에서 선물로 사온 ‘들쭉술’과 과자 서너 개를 담은 봉투를 들고 나오던 중이었다. 그때 인민복을 입은 북측 세관원이 갑자기 손을 내밀어 앞을 막았다.

“선물 값 수표(영수증) 주시라요.” 당황한 A씨는 “안 그래도 영수증을 달라고 했는데 호텔 직원이 ‘지금은 그냥 가셔도 된다. 믿으셔도 된다’고 해 그냥 왔다”고 답했다. 혹시 모를 사고를 우려해 통일부 당국자도 다가와 사정을 설명했다. 잠시 후 A씨가 나가려는 찰나 세관원은 다시 “어느 호텔에서 얼마어치를 샀습니까?”라고 따져 물었다.

A씨가 산 선물 가격은 모두 35달러(약 4만원). 세관원은 한숨을 쉬며 굳은 얼굴로 A씨가 제출한 세관신고서에 내역을 메모했다고 한다. A씨는 5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얼마 안 되는 가격이었는데도 자세하게 물어봐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통상 해외여행 시 외국에서 물건을 사더라도 국내 반입할 때나 세관 검사를 받지, 외국서 출국할 때 받진 않는다. 북한 세관원들이 이례적으로 출경하는 인원을 대상으로 영수증 검사를 벌인 것은 일종의 ‘세무조사’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호텔 직원들이 판매금액을 속이고 ‘딴 주머니’를 찰까봐 추적조사에 나선 거였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주민들이 ‘돈’의 가치를 깨닫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북한에 자본주의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강산을 방문했던 이산가족들은 달라진 북한 모습에 ‘격세지감’을 느끼고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 호텔 로비에는 수입산 커피와 독일식 하우스 맥주가 등장했고, 시장에 내다팔기 위해 감시의 눈길을 피해서 남측 가족의 선물을 황급히 숨기는 북한 이산가족도 있었다.

역시 2차 상봉단으로 북한을 방문했던 B씨는 “북한 호텔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다”며 웃었다. 방북 첫날 단체상봉을 마치고 연로하신 부모님을 숙소인 외금강호텔에 모시고 간 뒤였다. B씨는 “목도 칼칼하고 마음도 싱숭생숭해 ‘믹스 커피’라도 사마실까 하고 호텔 로비 커피숍에 갔다”고 말했다. 검은 정장을 입은 여종업원에게 “커피 좀 차갑게 해줄 수 있느냐”고 묻자 종업원은 “아이스 아메리카노 말씀입네까?” 하고 웃더니 유리잔에 이를 담아 내왔다고 한다.

이튿날 상봉장인 금강산호텔로 이동해서도 B씨는 1층 로비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그런데 종업원이 잠시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작은 찻잔에 ‘믹스 커피’를 타더니 찬물과 얼음을 몇 개 넣어 저은 뒤 수저로 잠시 맛을 보곤 내놓았다고 한다. B씨는 “차로 5분 거리인데도 금강산 호텔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안 파는 것 같더라”고 다시 웃었다.

호텔에는 하우스 맥주도 등장했다. 500㏄에 5달러인 이 맥주는 2년 전부터 오스트리아와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맥주 기술자를 초빙해 연수를 받아 직접 생산하는 제품이다. 4∼5종류의 맥주를 하루 최대 2t까지 생산해 판매한다. 금강산관광호텔 소속 북한 인민봉사총국 관계자가 하루 종일 바에 앉아 품질을 점검한다.

1차 방문단으로 북한에 다녀왔던 C씨는 60여년 만에 만난 북측 가족의 현실에 서글픔을 느꼈다. 우리 측이 주최한 1차 상봉에선 행사장에 ‘초코파이’와 ‘후레쉬파이’ 등 남측 다과가 마련됐다. 그런데 북측 가족들은 이를 먹지 않다가 행사가 끝나자 다 싸들고 나갔다고 한다. 북측 보장성원이 제지했지만 가방 하나와 주머니에 넣어서 모두 가져갔다. C씨는 “초코파이 하나가 북한 장마당(시장)에서 1달러 정도에 거래되는 것 같더라”라며 “북측 가족이 ‘너희들 때문에 이런 호강을 다하네’라고 말하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에는 대표적 종합시장인 통일거리를 비롯해 중앙·평성·회령·사리원·채하시장 등이 성행하고 있다. 사회주의인 북한은 시장 거래를 금지하고 있지만 지하 거래가 활성화되자 ‘장세(場稅)’를 걷으며 공식화하는 추세다. 정부 소식통은 “북한 시장은 이미 막을 수 없을 정도로 활성화돼 있다. 북측도 고민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강준구 조성은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