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 칼럼]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

입력 2015-11-06 18:17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는 자살하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했다. 죽어가는 사람의 생명을 구하지 못하게 하다니, 너무 잔인한 일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의 목에 달려 있는 줄을 끊는 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했었다.

당시 수감자 중의 한 사람이었던 정신과 의사 빅터 프랭클은 두 사람의 자살을 예방했던 일을 그의 책 ‘죽음의 수용소’에 기록하고 있다. 두 사건의 성격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했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자살 동기를 털어 놓았는데 ‘삶으로부터 아무것도 기대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모두 하는 말이다.

이런 때에, ‘인생이 당신에게 여전히 무엇인가를 기대하고 있으며, 미래에는 인생에 무엇인가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프랭클은 말한다. 실제로 그 중 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그의 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가 그렇게 사랑하는 그 아이는 지금 다른 나라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사람에게 그 대상은 사람이 아닌 책을 쓰는 일이었다. 이 사람은 과학자로 그 동안 책을 써오고 있었는데 그것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일은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그 아이에게 아버지를 대신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든 개개인에게 존재의 절대가치를 부여하는 이런 독특성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의미를 준다. 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일단 깨닫게 되면, 생존에 대한 책임감이 주어지는 것이다. 사랑으로 자기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를 그리고 아직 완성하지 못한 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 사람이 자기존재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두 사람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면서 그 어떤 어려움도 견뎌낼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랭클은 비참한 동료 수감자들이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왜 살아야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는 말을 반복하여 들려주었다.

당시 아우슈비치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이나 현재 우리들이나 모두 정신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자기 존재에 대한 가치’를 찾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하는 법이다. 현실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욱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와 목표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랭클은 “슬프도다! 자신의 삶에 더 이상의 느낌이 없는 사람, 이루어야 할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는 사람이여! 그런 사람은 곧 파멸했다”고 말한다.

우리가 아무리 절망스런 상황에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운명과 마주쳤을 때에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프랭클에게 어느 날 나이 지긋한 의사 한 분이 우울증 때문에 상담을 받으러 왔다. 그는 2년 전에 세상을 떠난 아내에 대한 상실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를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했다.

“선생님.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것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런 고통을 면하신 겁니다. 부인에게 그런 고통을 면하게 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그 대가로 지금 선생께서 살아남아 부인을 애도하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분은 조용히 일어서서 악수를 청한 후 진료실을 나갔다.

최근 우리나라가 10년 넘게 OECD 회원국에서 자살률 1위라고 한다. OECD ‘건강 통계 2015’의 자살 사망률은 인구 10만 명당 12.0명이지만 우리는 평균치의 두 배를 훌쩍 넘는 29.1명으로 나타났다. 2위 헝가리(19.4명)나 3위 일본(18.7명)등을 압도하고 있다.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여호와는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고전10:13)

김종환(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