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구세군 전국사관 성결수련회가 열린 충북 영동군 백화산수련원. 대강당에 들어서니 강의가 진행 중이었다. 구세군사관학교 목회신학과 조교수인 김종선 사관이 ‘사회적 성결: 자본주의의 반기독교적 얼굴들’이란 주제로 구세군의 성결 개념을 설명하고 있었다.
“구세군의 ‘사회적 성결’은 세속 속으로 하나님의 성결을 확산시키는 것입니다. 존 웨슬리의 신앙 공동체 운동과 달리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는 성결의 체험을 전인적으로(holistically)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표출하라고 했습니다.”
영국에서 시작된 구세군은 성만찬을 하지 않는다. 초창기에는 했지만 알코올 중독자가 많던 시절, 한 모금의 포도주에도 흔들리는 이들을 보면서 포기했다. 대신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몸과 마음, 영혼까지 살피며 전인적으로 이웃을 섬기는 삶으로 성례전을 대체했다. 그래서 구세군은 다른 어떤 교단보다 성결을 강조하며 격년마다 세미나를 해왔다.
3박4일간 진행된 이번 수련회는 과거 세미나와 차원이 달랐다. 구세군 사관은 의무적으로 참석하도록 했고, 9번의 강의를 듣고 매일 밤 1시간30분과 새벽 한 시간씩 성결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다. 오후에는 기도와 말씀 집중훈련, 공식 행사 시간 외에는 말을 삼가는 묵종훈련까지 빡빡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강의가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이고 힘들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의실의 플라스틱 간이 의자는 장시간 앉아 있기에 불편했다. 공동숙소는 매트리스 한 장과 이불이 전부인 데다 최대 20명이 함께 사용해서 아침마다 화장실 가는 게 전쟁이었다. 청소년 극기 수련회와 다를 바 없었다.
건물 곳곳엔 ‘침묵’이라고 쓰인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날은 할 수 있는 말을 50마디로 제한했다. 묵종훈련은 처음이라 쉽지 않았다. 한 사관은 “오랜만에 만난 분도 많은데 말을 안 하려니까 정말 힘드네요”라며 웃었다.
수련회에는 전국 구세군 사관 638명 중 581명이 참석했다. 복지관 등 시설을 운영해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이들을 제외하고 모두 참석한 셈이다. 참석하지 못한 이들은 동영상으로 강의를 본 뒤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부부가 함께 사관으로 사역하는 구세군 특성상 어린 자녀를 맡길 데가 없어 데리고 온 이들도 눈에 띄었다.
구세군은 정해진 호봉에 따라 똑같은 생활비를 지급한다. 그마저도 최저임금 수준이어서 매우 박하다. 장년 교인이 150명을 넘어야 목회자에게 차량을 지원할 수 있고, 교회 상황별로 탈 수 있는 차량의 배기량도 엄격히 정해져 있다. 목회비는 물론 특강비 등도 마찬가지다. 박종덕 사령관 부임 후엔 본부 및 산하기관 행정직에 주던 수당 50만원도 삭감했다.
이날 두 번째 강연 ‘절제와 극기’를 발표하러 나온 10년차 여사관 박준선 정위가 “뭐가 있어야 절제도 하는 거지, 얼마나 더 절제하라는 건지 참 어렵다”며 입을 열자 청중 속에선 “와∼” 하는 공감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많은 사관들이 물질적 궁핍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지만 자녀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힘들어한다. 충북 청주에서 목회 사역 중인 반영선(41·여) 사관은 세 자녀를 맡겨놓고 수련회에 참석했다. 그는 “6학년 아들이 ‘반 친구 27명 모두 학원을 다니지만 자기는 안 다녀도 괜찮다’고 한다”며 “미안하고 짠하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목회자 자녀라 그런 마음을 주시는구나 싶어 감사하다”고 했다.
이날 마지막으로 강단에 선 박 사령관은 “성결에도 수준이 있는데 어느 수준으로 나를 세울지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 한다”며 바른 가치관, 바른 행실, 절제와 검소를 강조했다.
“강단에 서기 직전까지 설교에 무슨 욕심이 숨어 있나, 교회 운영과 관련해 얄팍한 의도가 있지 않나 살펴보고 보이면 빼 버리세요. 설교했으면 내가 설교한 내용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정직하라고 설교했으면 정직하게 살아야 해요. 교인들에게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가르치고 제한할 줄 아는 ‘영적인 배짱’을 가지세요. 세상은 다 거꾸로 가더라도 우리는 하나님 가르침대로 바르게 가야 합니다.”
업무용 승용차도 자격이 됐으니 사달라고 교인들에게 먼저 요구할 생각을 하지 말고, 자녀 학자금도 교회 형편 어려우면 욕심내지 말란다. 한 사관은 “저분은 그렇게 말할 자격이 있는 분이니까, 아프지만 들어야죠”라고 했다.
충북 보은에서 목회하는 김윤택 사관은 이렇게 말했다. “힘들 때도 있지만 청빈한 삶이 군색한 삶은 아니거든요. ‘마음은 하나님께 손길은 이웃에게’라는 구세군 사관의 소명을 붙들고 즐겁게 살아가는 거죠.”
저녁 8시40분, 다시 불이 꺼지고 저녁 기도가 시작됐다. “내 안의 욕심들, 다 내려놓게 해 주세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소리가 들렸다. 밤 기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기자의 마음속에서도 그의 기도가 계속 울렸다.
영동=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구세군 전국사관 성결수련회 현장] “세상은 거꾸로 가도 주님 가르침 따를 ‘영적 배짱’으로 무장”
입력 2015-11-05 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