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울리는 위약금] 신상 스마트폰 바꾸려다 ‘할인 반환금 폭탄’… 약정할인 득과 실

입력 2015-11-05 21:16

제약회사 영업사원 권모(34)씨는 업무 특성상 휴대전화 통화가 잦다. 권씨는 ‘69’ 꼬리표가 달린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매달 6만9000원에 부가가치세 10%를 더해 7만5900원을 내야 하지만 실제로는 5만6100원만 낸다. 지난해 10월 한 이동통신사에 가입하면서 24개월 약정계약을 맺은 덕이다.

권씨는 2만원 가까이 아낄 수 있어 기쁘면서도 한편으론 머릿속이 복잡하다고 했다.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그동안 할인받았던 요금 가운데 일부를 되돌려줘야 한다. 새로 나온 휴대전화를 사고 싶어도 복잡한 셈법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결혼한 새댁 김모(31)씨는 무심코 약정계약을 맺었다가 낭패를 봤다. 원래 3만9900원인 케이블TV와 인터넷을 묶어서 1만9900원에 사용할 수 있다는 전단지에 눈길이 간 건 지난해 3월. 김씨는 쓰던 인터넷을 해지하고 지역 케이블업체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 당시 업체 직원이 계약서를 내밀며 확인해보라고 했는데, 김씨는 복잡한 조항이 나열된 계약서를 읽어볼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서명했다.

2만원 요금 할인에 시가 30만원 LCD 모니터까지 받을 수 있어 횡재라고 여겼다. 계약서에 적힌 ‘36개월 약정’ 문구가 문제가 될지는 몰랐다. 결혼을 하고 신랑 집으로 들어가면서 계약을 해지하게 된 그는 ‘할인 반환금’ 32만원을 고스란히 토해낼 수밖에 없었다.

‘약정할인’은 ‘위약금’의 짝패쯤 된다. 소비자를 묶어두려는 기업은 긴 계약기간을 약정토록 요구하며 할인을 보장한다. 대신 약정을 깨면 다양한 명목으로 위약금을 부담시킨다. 약정할인은 ‘잠금 효과’로 기존 고객을 유지·관리하는 마케팅 방식이다. 고객 수가 곧 수익으로 연결되는 이동통신이나 인터넷, 케이블TV 업계에서 주로 활용한다.

약정할인 제도를 활용하는 기업 측은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한 이동통신사 관계자는 “회사는 신규 고객 창출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고객 입장에선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며 “장기간 계약하는 대신 요금 할인을 원하는 고객들에겐 약정할인이 득이 될 수 있다. 장기 계약을 원치 않으면 약정계약을 맺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기업과 소비자 모두 선택지를 더할 수 있어 ‘윈-윈’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소비자 입장에선 약정할인이 족쇄가 될 수도 있다. 길고 복잡한 계약서를 앞에 두고 약정할인의 실익을 계산하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대다수 소비자는 ‘남들 다 하니까 안 하면 손해 보는 것 같아서’ 약정할인을 맺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이동통신과 인터넷, IPTV 등 다양한 서비스를 묶거나 가족과 친구를 묶는 ‘결합 약정할인’이 늘어나 소비자의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하고 있다.

과도한 약정할인이 소비자를 옥죈다는 지적도 있다. 심현덕 참여연대 간사는 5일 “18개월이나 24개월씩 장기로 소비자를 묶어두는 계속적 계약은 소비자가 가진 해지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또 이동통신 요금처럼 셀 수 없이 많은 요금제가 시장에 나와 있고 그 원가를 가늠하기 힘들 경우에는 약정할인의 득실을 따지기 어려워 소비자 권리가 침해받을 수도 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