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울리는 위약금] “예약취소 인한 손실 다 떠안아… 어쩔 수 없어”

입력 2015-11-05 21:13

위약금을 받는 업체도 할 말은 있다. 고객과 업체가 신뢰를 바탕으로 계약을 맺는데 이를 어기면 위약금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장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위약금을 받지 말라는 건 장사하지 말라는 말"이라고 했다. 고객 유치에 드는 마케팅비용 등을 거론하며 위약금의 당위성을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로 계약서에 적어 넣는 위약금의 산정 과정에 소비자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쌍방 계약이지만 사실상 일방적인 요구인 셈이다.

“고객 유치 위해 장기계약은 필수”

지난해 10월 이동통신단말기 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시행되면서 휴대전화 위약금에 대한 소비자 불만이 급증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소비자 756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96.8%(732명)가 단통법에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 이유 중 상당 부분은 위약금 문제였다. 불법 지원금을 근절해 누구는 싸게 사고 누구는 비싸게 사는 차별을 없애자는 거였는데, 소비자 만족도가 그리 높지 않은 배경에 위약금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단통법 시행으로 소비자는 계약기간을 채우지 않고 휴대전화를 바꾸면 그동안 받은 지원금을 통신사에 반환해야 한다. 참여연대 관계자는 “소비자는 제조사가 제공하는 판매 장려금을 위약금으로 반환할 의무도 없을뿐더러 반환하더라도 제조사에 반환해야지, 통신사에 반환하는 건 이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통신업계 관계자는 “통신사 마케팅 구조를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그는 “고객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광고 등 마케팅 비용이 상당히 든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 약정을 맺은 고객에게 요금 할인을 제공하는 건 일종의 고객 유치 기법”이라고 말했다.



“예약 취소 손해는 전부 업체 몫”

여행업체 예식업체 등은 제휴를 맺고 있는 항공사 호텔 등에서 예약을 취소할 경우 수수료를 물어야 하기에 위약금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항변한다. 여행업계는 일반약관과 특별약관을 따로 두고 위약금 비율을 산정한다. 일반약관은 예약 전 기간에 따라 위약금 비율이 정해져 있지만 특별약관은 상품마다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특별 전세기나 고가 객실의 경우 예약과 동시에 보증금을 내야 해 약관을 다르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여행업체 관계자는 “여행사는 항공권을 상품별로 미리 30∼50석씩 예약해 두는데, 이 좌석들이 판매되지 않으면 그 손해를 여행사가 다 떠안게 된다”며 “위약금을 계약 조항에 넣지 않을 경우 피해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약금 과다 산정을 들먹이며 우리를 ‘도둑놈’ 취급하기도 하는데 사실 업계 입장도 고려해야 한다. 갈수록 소비자 편의 중심으로 약관이 개정되다 보니 여행업계 발전에 있어서는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덧붙였다.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정당한 이유 없이 버티는 불공정 관행을 강변하는 업체도 많다. 지난달 27일 한 봉안시설에 전화를 걸어 중도 해지에 따른 환급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환급은 안 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대신 양도수수료 50만원을 내면 타인에게 양도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공정위의 ‘소비자분쟁해결기준’에는 “소비자가 봉안 후 이용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경우 사업자는 이용기간별로 환급 비율을 적용해 환급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고시원 역시 마찬가지다. 계약을 해지하면 업자는 해지하는 날까지의 요금을 정산해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일부 고시원은 ‘입실 후 열흘이 지나면 환불이 불가하다’ 등의 계약 조항을 들어 환불을 거부하고 있다. 한 고시원장은 “한 달 단위로 계약하고 있는데 중간에 입실 손님이 나가면 그 손해는 누가 배상하느냐”며 “하루이틀만 있다 나갈 거면 모텔이나 호텔에 가는 게 낫다”고 했다.

‘막무가내 영업’은 계약관계에서 소비자가 ‘을’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공급자의 횡포를 막을 강제적 장치는 사실상 없다. 공정위는 1985년 소비자분쟁해결기준을 제정하면서 최근까지 개정을 거듭해 왔지만 말 그대로 ‘기준’일 뿐이다.

1372소비자상담센터는 지난 9월 한 달간 계약해지나 위약금과 관련된 소비자 상담이 1만1195건 접수됐다고 5일 밝혔다. 전체 상담 중 18%를 차지했다. 품질 문의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위약금 상담은 한 달에 1만건 이상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심희정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