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명숙 <10> 20일 만에 베트남서 중국으로 쫓겨난 탈북형제들

입력 2015-11-05 17:54 수정 2015-11-05 21:02
조명숙 여명학교 교감이 보호하던 한 탈북 어린이가 트럭에 몰래 타는 장면과 북한의 식량난민들을 그린 그림. KBS ‘일요스페셜 13인의 탈출’에 방송됐던 장면을 캡처한 것이다.

베트남 국경에서 간신히 풀려난 우리는 한국대사관이 있는 하노이로 향했다. 하지만 국경수비대에게 신문을 받느라 예정보다 늦게 도착한 우리 일행은 굳게 닫힌 대사관 문 앞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비자나 여권이 없던 탈북형제들은 호텔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고된 여정으로 탈진하기 직전인 그들을 거리에서 재울 수는 없었다. 묘안이라고 생각해낸 것이 관광지 하롱베이로 가서 배를 빌리는 것이었다. 밤바다를 좋아한다고 선장을 설득해 배를 띄운 뒤 선상에서 밤을 보냈다. 하롱베이의 밤바다와 야경은 물론 아름다웠지만 생사의 기로에 있던 우리에게는 잔인한 장면일 뿐이었다.

이튿날 아침 주베트남 한국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대사관 직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13명의 탈북형제들이 무사히 대사관에 진입하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우리 부부 등 네 명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한국에 와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대사관과 외교부에 탈북형제들의 안부를 물으며 입국 일정을 계속 확인했다. 담당자들은 “곧 들어갈 테니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반복했다.

대사관에 진입한 지 20일쯤 지났을까. 탈북형제 중 한 명이었던 금실이 언니가 전화를 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언니는 대사관에서 베트남 정부로 보내져 신문을 받다가 갑자기 중국 국경으로 보내졌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13명 중 한 명의 건강이 악화돼 갑자기 쓰러지면서 그 일가족 4명만 대사관에 머물러 무사했고 나머지 9명은 신문을 받다가 불법으로 국경을 넘은 것이 탄로 나 중국으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중국 쪽 국경에서는 한 무리 사람들이 베트남 국경으로 다가오더니 총을 겨누면서 베트남 국경으로 돌아가라고 위협했어. 베트남 국경에서는 반대로 우리 일행을 향해 총을 겨눴어. 너무 무서워서 뿔뿔이 흩어져 국경지대 지뢰밭으로 도망친 거야.”

그 과정에서 금실이 언니는 구사일생으로 중국 국경마을까지 빠져나와 나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다른 형제들의 행방을 물으니 언니는 “모르겠다”며 눈물만 쏟아냈다. 우리는 당장 기자회견을 열고 ‘13인의 탈출’ 여정을 공개하며 한국 정부에 “그들을 살려 달라”고 호소했다.

언론은 남한 국민이 북한 인민의 탈출을 돕다가 벌어진 초유의 사건을 집중 조명했다. 중국과 베트남 국경에서 벌어진 이 일에 ‘핑퐁 난민사건’이라는 제목까지 달았다. 그러나 관심만 있을 뿐 누구도 현장에 달려가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우리는 탈북형제들을 찾으러 현장으로 가기 위해 다시 짐을 쌌다. 혹 무슨 일이 생기면 한국에서 뒷일을 감당할 사람이 필요했기에 4명의 팀원 중 내가 남기로 하고 남편과 팀원 2명이 중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6개월 만에 탈북형제들을 모두 찾았다는 기적 같은 소식을 전했다.

감격스러운 재회와 함께 그동안의 역경들이 간증처럼 터져 나왔다. 형제들은 평지로 가면 지뢰를 밟을 것 같아 산으로 올라갔는데 산속에서 오징어 같은 뱀들이 나왔다고 한다. 늑골을 편 코브라가 그들 눈에는 오징어같이 보였던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직감한 탈북형제들은 우리가 은신처에서 함께 기도했던 일들이 떠올랐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저희 좀 살려주세요’라고 매일 기도드렸어. 그랬더니 어디선가 다른 오징어 뱀 한 마리가 나타났고, 우리를 노려보던 뱀들이 그 뱀을 따라 다른 곳으로 떠났어.” 내 생각엔 때마침 나타난 암컷 코브라를 수컷 코브라들이 따라간 것 같았다. 어쨌든 탈북형제들은 “하나님께서 숱한 고비 가운데서도 우리 기도를 들어주셔서 살 수 있었다”며 마음밭에 믿음의 씨앗을 뿌렸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