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울리는 위약금] 10%면 되는데 중도해지했다고 ‘덤터기’… 끊이지 않는 ‘위약금 폭탄’ 피해

입력 2015-11-05 21:14
위약금은 우리 일상 곳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 2년 약정할인을 받아 휴대전화를 샀다가 약정기간 중 잃어버려 위약금을 무는 건 흔한 일이 됐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에 부과되는 가맹해약 위약금은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점주 여럿을 자살로 내몰았다. 사적(私的) 계약의 안정성을 위해 필요하지만 ‘상식’을 벗어나면 소비자를 옭아매는 수단으로 변질된다. 문제는 통제가 잘 안 된다는 데 있다. 새 출발을 앞둔 예비부부, 인생 이모작을 준비하는 은퇴자 등에겐 ‘공포’로 다가오기도 한다.

예비부부 울리는 ‘스·드·메 위약금’

서모(34·여)씨는 올 4월 결혼식을 치르려고 지난해 10월 한 예식장과 계약했다. 총 1300만원 예식비용 중 130만원을 계약금으로 지급했다. 사정이 생겨 지난 1월 말 계약을 해지하자 예식장 측은 예식비용 중 50%인 650만원을 위약금으로 내라고 다그쳤다.

결혼식을 3개월 가까이 남겨둔 시점이었다. 다른 고객을 받을 시간이 충분히 남아 있어 예식장에 별로 피해가 없으리라 생각했는데 예식장 측은 거액의 위약금을 청구했다. 사정을 해봤지만 요지부동이었다. 정말 이 정도 위약금을 내야 하는 것일까.

공정거래위원회가 권장하는 예식업 ‘적정 위약금’은 해약 시점이 결혼식을 90일 미만 남겨뒀을 때부터 발생한다. 그 전에는 위약금을 안 내도 된다. 60∼89일 남았다면 전체 비용의 10%, 30∼59일이면 20%, 그보다 적게 남았을 때는 35%다. 서씨는 예식장과 다툼을 벌이다 한국소비자원에 조정을 신청하고야 계약을 해지할 수 있었다. 위약금은 10%인 130만원만 냈다.

결혼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위약금은 골칫거리다. 예식장부터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라 불리는 ‘필수’ 품목까지 모든 계약에 위약금이 따라붙는다. 시장 정보에 어둡고 계약에 서툰 예비부부는 철저하게 ‘을’이다. 몇 달 전부터 분주하게 결혼식 준비를 하다보면 위약금이 얼마인지 따질 겨를도 없다.

이에 서씨와 같은 소비자 피해가 매년 꾸준하게 발생하고 있다. 5일 소비자원에 따르면 지난해 1월부터 올 8월까지 예식장과 관련해 접수된 피해사례는 모두 250건이고, 그중 위약금 과다 청구가 22.8%를 차지했다.

은퇴자 옥죄는 ‘프랜차이즈 위약금’

2012년 명예퇴직한 임모(57)씨는 한 프랜차이즈 편의점업체와 5년 계약을 맺고 편의점을 냈다. 이듬해 건강이 나빠져 점포를 접어야 할 처지가 됐다. 가맹본부 측은 계약기간이 3년 이상 남았다며 10개월치 로열티로 3000만원가량을 내라고 요구했다.

그런 목돈을 부담하기 어려웠던 임씨는 울며 겨자 먹기로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 편의점을 꾸려갔다. 늘어나는 인건비가 발목을 잡았고, 결국 지난해 편의점 문을 닫았다. 그러면서 가맹본부에 4개월치 로열티를 위약금으로 냈다.

결과적으로 임씨는 부당하게 위약금을 많이 낸 거였다. 공정위는 이런 위약금이 너무 과도하다고 판단해 2013년 5개 편의점업체와 협의, 위약금을 종전보다 40% 낮췄다. 통상 잔여계약기간이 3년 이상이면 10개월치, 3년 미만이면 6개월치이던 것을 잔여기간에 따라 2∼6개월치로 바꿨다. 그래도 잘 안 지켜지자 2년여 만에 ‘표준가맹계약서’를 만들어 5일부터 업계에 사용을 권장하기 시작했다.

햄버거 도넛 컵밥 등 즉석가공식품을 유통하는 무점포 총판점 사업은 1000만원 이하 소자본 창업이 가능해 중·장년 서민층이 많이 뛰어드는 분야다. 총판 계약을 체결해 운영하다 해지할 경우 잔여기간이나 귀책사유 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계약금과 중도금을 위약금 명목으로 챙겨가곤 했다. 결국 공정위가 지난해 나서서 불공정 약관을 바로잡았지만, 현장에선 여전히 위약금 분쟁이 불거지고 있다.

IT강국? 위약금 강국?

한 번 계약을 맺으면 몇 년은 사용하게 되는 휴대전화, 인터넷, 케이블TV 등 IT업계 계약에도 위약금은 빠지지 않는다. 심모(22)씨는 지난해 경기도 김포에서 한 인터넷업체와 3년 약정계약을 맺었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면 위약금이 면제되는 조건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심씨는 지난달 서울로 이사하면서 계약 해지를 요구했다가 전체 위약금의 절반인 6만원을 부담해야 했다. 업체 측은 “주민등록을 이전한 게 아니어서 위약금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씨는 업체 측과 책임이 절반씩 있는 것으로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노모(25·여)씨는 2013년 11월 구입한 휴대전화가 고장 나 지난 10일 새 휴대전화로 바꿨다. 약정기간 2년 가운데 한 달을 채우지 못해 위약금 16만원을 내야 했다. 노씨는 “실질적으로 약정 없이 휴대전화를 사는 게 불가능한 상황인데, 6개월 단위로 끊어서 위약금을 책정하는 건 부당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