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사편찬위원회가 4일 대표 집필진으로 확정 발표한 최몽룡(69) 서울대 명예교수가 최근 논문에서 ‘한반도 최초의 고대국가’가 ‘위만(衛滿)조선’이라고 적시해 고조선(古朝鮮)을 최초의 국가로 보는 기존 교과서 기술과 배치된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최 명예교수와 함께 대표 집필자로 선정된 신형식(76) 이화여대 명예교수는 과거 “검인정 교과서 체제가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던 논문이 도마에 올랐다.
◇한반도 최초 국가는 위만조선?=최 명예교수는 2013년 3월 31일 ‘겨레문화연구’ 제2호에 실린 논문 ‘한국 선사고고학의 연구동향’에서 “한반도 최초의 고대국가는 위만조선(기원전 194년∼기원전 108년)이다”라고 기술했다.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됐다고 거론되는 것은 단군조선이지만 이는 ‘신화’를 역사적 사실보다 앞세운 해석이라고 봤다. 그는 “고대국가의 기원은 앞으로 고고학적 자료의 증가에 따라 단군조선에까지 더 소급될 수도 있다”면서도 “단군신화는 민족의 정신적 지도자와 민족 단결로서의 역할이 실제의 역사적인 사실보다 더욱더 기대되고 있다”고 했다.
이는 단군이 건국한 고조선을 한반도 최초의 국가로 기술한 기존 교과서에 어긋나는 학설이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교육부가 지난 9월 개정한 교육과정 해설서나 국정 교과서였던 7차 교육과정의 한국사 교과서도 고조선을 최초의 국가로 기술하고 있다. 7차 교육과정 교과서는 ‘족장 사회에서 가장 먼저 국가로 발전한 것은 고조선이다. 삼국유사와 동국통감의 기록에 따르면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건국하였다(기원전 2333년)’고 기술했고, 교육부의 ‘교육과정 원문 및 해설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성립’이라고 돼 있다.
학계에서는 최 명예교수의 논지가 중국의 ‘동북공정’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고대사 서술을 강화한다는 교육부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익명을 요구한 고대사학자는 “우리 역사를 축소하는 것이어서 교육부가 강조하는 ‘자랑스러운 역사’와도 충돌한다”고 말했다.
최 명예교수는 주장의 근거로 “무력, 경제력, 이념(종교)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적이고 전문화된 정부조직을 가진 것”이 국가라고 제시했다. 이어 “문헌에 나타나는 사회조직, 직업적인 행정관료, 조직화된 군사력, 신분의 계층화, 행정 중심지로서의 왕검성(평양 일대로 추정)의 존재, 왕권의 세습화, 전문적인 직업인 존재 등의 기록으로 보아서 위만조선이 현재로는 한반도 최초의 국가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고 썼다.
학계는 위만조선의 중심인 왕검성을 평양으로 판단한 것은 동북공정의 논리와 일맥상통한다고 지적했다. 윤내현 단국대 교수는 저서 ‘고조선 연구’에서 다수의 중국 역사서에 따르면 고조선의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 전역이라고 제시했다. 마한·진한·변한 즉 삼한의 위치도 지금의 요동지역이라고 봤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중국이 위만조선을 무너뜨리고 세운 한사군의 위치를 평양으로 서술하는 것은 조선총독부의 관점이며 지금의 북한 지역인 고조선 일대를 중국 역사 강역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핵심”이라고 했다.
또 최 명예교수는 “세계에서 도시문명국가는 청동기시대에 나타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중국의 영향 하에 성립되는 이차적인 국가가 되며, 또 세계적인 추세에 비해 훨씬 늦은 철기시대 전기에 나타난다”고 명시했다. 2012년 위례문화 제15호 ‘한국고고학·고대사에서 종교·제사유적의 의의’에서도 “한사군 설치 이후 한반도 내에서 중국문화의 일방적 수용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 같다”고 적었다.
◇28년 만에 바뀐 입장=이날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기자회견에 배석한 신 명예교수는 1987년 발표한 ‘중등학교 국사 교과서 내용상의 제(諸)문제’라는 논문에서 ‘국사 교과서는 국민적인 포용성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자율적인 한국사관을 정립하려면 딱딱한 국정보다는 일정한 틀 아래서의 검인정이 바람직하다’고 언급했다. ‘교과서는 국가(정부)의 저작이 아니며, 정치적 입장이 반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8년 전의 소신을 뒤집고 이번에 국정 교과서 집필을 맡은 셈이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출신인 신 명예교수는 보수적 성향의 주류 사학자로 분류된다. 한국고대학회장과 서울시 역사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2013년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기자회견과 성명에 참여했다.
역사학계 원로인 그에 대해 학계 관계자들은 은퇴한 지 오래돼 최근 역사 연구의 동향을 제대로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했다. 한 역사학과 교수는 “삼국사기 연구를 주로 해서 고구려사 등의 책을 냈지만 딱히 학계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지는 않았다”며 “중진 학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 학자들이 국정화에 반대해 원로급을 대표 집필자로 내세운 것 같은데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전수민 이경원 박세환 김판 심희정기자 suminism@kmib.co.kr
[관련기사 보기]
[단독-국정교과서 일정 발표] “고대사 서술 강화” vs “역사관 문제 있다”
입력 2015-11-05 00:49 수정 2015-11-05 0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