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안부 부인하는 日에 맞서 ‘역사적 증거’로 대응

입력 2015-11-05 00:38 수정 2015-11-05 10:45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에 참가한 학생과 시민들이 4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주위에 앉아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촉구하고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건강 문제로 참석하지 못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 및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는 배경에는 위안부 문제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담겨 있다. 피해 할머니의 증언뿐 아니라 여러 역사적 기록을 바탕으로 일본의 ‘위안부 강제동원 부인’ 전략에 맞서겠다는 것이다. 위안부 전문가들은 “시기적으로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역사적 기록을 모으고 연구하는 일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미흡했던 역사적 사실 규명

위안부 문제 관련 일본의 사죄를 촉구하는 사회운동은 민간 주도로 그동안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 규명 작업은 미흡했다는 게 학계의 평가다.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을 뒷받침할 기록물을 세계 도처에서 찾아내고 분석하는 작업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지난 8월 광복 70주년 기념 국제학술심포지엄에서 “세계 사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상식이 된 듯하지만 사실은 역사적 사실이 명확히 밝혀진 것도 아니다”면서 “역사적 사실 규명이 선행돼야 문제의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는 정부의 책임이 크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법 11조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관한 역사적 자료의 수집과 보존·관리·전시 및 조사·연구를 국가가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여성가족부는 주로 피해 할머니에게 생활안정지원금, 간병비 등 지원 활동과 기념사업에 집중했다. 관련 사료 발굴과 연구에 배분된 예산은 극히 적었다. 그 결과 연구자 집단이 형성되지 못했다. 국내에서 위안부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은 손에 꼽힌다.

한 위안부 문제 전문가는 “그동안은 정부에서 뒷받침을 받지 못한 채 일본과 싸운 것이나 마찬가지”라면서 “제대로 된 연구를 위해선 하루라도 빨리 체계적인 아카이브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객관적 사실’ 운운하는데

정부가 위안부 역사관 및 연구소 설립을 추진하는 데는 최근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4일 국회의 2016년 정부 예산안 예비심사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일본 자민당의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특명위원회’는 지난 7월 아베 신조 총리에게 ‘일본의 명예와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제언’ 보고서를 제출했다. 위원회는 보고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일방적 주장으로 일본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명시했다. 이어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객관적 사실에 기반을 둔 반론을 실시해 오류를 바로잡겠다’는 전략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는 ‘일본의 입장을 국제적 영향력을 가진 미국과 유럽의 학자, 연구기관, 보도기관을 통해 국제사회에 전달하자’고 했다.

국회는 일본이 이미 이런 전략에 의해 움직이고 있으며 효과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국회는 “2007년 미 하원에서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은 168명이 지지했는데 지난 4월에는 지지자가 25명으로 줄었다는 보고가 있다”면서 “정부의 체계적 대응이 요구된다”고 지적했다.



유네스코 등재, 역사적 근거 필요

위안부 관련 심층 역사 연구는 위안부 기록물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에도 꼭 필요하다는 게 국회와 전문가 시각이다. 위안부 기록물 등재 신청은 2017년 6월을 목표로 내년 3월에 이뤄질 예정이다. 중국 대만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의 민간단체와 공동 추진도 검토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둘러싼 일본과의 역사 논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본은 결정적 국면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사료를 제시하며 강제동원을 부인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의 기록물 등재 방해 움직임은 이미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한 전문가는 “지금부터라도 바짝 준비해 일본에 ‘거짓말 하지 말아라, 우리도 자료를 갖고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해까지는 역사관 중심의 시설 건립을 검토하다가 올해 연구소 기능을 포함시킨 것으로 보인다. 여가부는 지난해 11월 국회 위안부문제대책소위에 “역사관 건립을 두고 용산전쟁기념관과 협의했지만 공간이 부족해 협의가 종료됐다”고 보고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새로운 부지를 물색 중”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