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국민의 이야기’와 다른 ‘국민의 이야기’가 대립했을 때, ‘국민의 이야기’와 ‘개인의 이야기’가 대립했을 때, 어떤 ‘개인의 이야기’와 다른 ‘개인의 이야기’가 대립했을 때 등 ‘다원적’인 이야기 사이에 대립이나 항쟁이 생겼을 경우, 어떤 이야기를 탐구하고 다른 이야기를 물리칠 근거는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역사/수정주의’는 일본에서 1990년대 진행된 전쟁책임, 전후책임, 식민지 지배 책임 등을 둘러싼 논쟁들을 다루면서 ‘역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가?’에 답하고자 한다. 국내의 역사 교과서 논쟁과 관련해 여러 가지 중요한 관점들을 제공한다.
저자인 다카하시 데쓰야(59) 도쿄대 교수는 역사수정주의, 역사인식논쟁, 전후책임론 등과 관련해 중요한 논자로 활동해 왔다. 다카하시는 이 책에서 1990년대 후반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등 우익들에 의해 제출된 ‘일본판 역사수정주의’의 몇 가지 주요 논점들에 대해 반론한다.
다카하시는 ‘역사와 책임’ ‘역사와 이야기’ ‘역사와 판단’이라는 세 가지 주제를 통해 논전을 펼친다. 먼저 ‘죄인의 자식 취급 따위는 사양하겠다’며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일본군 위안부 등 전쟁범죄를 부인하려는 시도들에 대해 “직접 죄가 없는 일본인이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범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시키는 것이지 범죄를 저지른 일본인의 죄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또 전쟁을 직접 저지르지 않은 전후세대의 국민으로서 져야 할 전쟁책임이 과연 뭐냐는 질문에는 “전후 일본 국가에게 ‘전후책임’을 완수하게 만들 ‘정치적 책임’이 있다”고 답변한다.
다카하시는 역사논쟁 과정에서 동원되는 논리들을 검토하면서 한계와 허점, 오류 등을 폭로한다. 그는 ‘절대적인 역사란 없고 역사는 이야기일 뿐’이라는 역사서사론, 역사와 심판을 논할 때 반드시 나오는 반론인 ‘역사를 현재 입장에서 심판할 수 없다’는 주장, ‘역사가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라’는 다원주의, ‘역사에서 윤리는 처음에 외쳐야 할 단어가 아니라 마지막에 말해야 할 단어’라는 윤리주의 비판 등을 하나하나 불러내 정밀하게 논파한다.
예를 들면, 위안부와의 교정(交情)을 그리운 듯이 말하는 전 일본 병사의 현실과 위안부 경험을 공포와 억압으로 말하는 피해자 여성의 현실 사이에는 메우기 힘든 격차가 있다. 둘 다 관계의 당사자이지만 경험의 격차는 이토록 크다. 이런 역사를 어떻게 서술할 것인가?
그는 “전 일본 병사의 ‘현실’과 전 위안부의 ‘현실’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 양자의 ‘현실’이 동등한 권리, 동등한 정당성을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가해’와 ‘피해’ 관계를 말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정당/부당의 판단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역사수정주의만이 아니다.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측의 논리적 허점도 지적한다. 온갖 궤변이 판치는 역사논쟁 속에서 그가 끝끝내 옹호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책임의식,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용기, 그리고 올바름에 대한 추구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속에서는 어떤 판결도 최종 결정적인 것이 아니다. 모든 판결은 잘못될 수 있으며 ‘재심’의 길이 열려 있다. 그러나 그 일이 올바름을 향한 추구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그 반대다. ‘재심’ 청구는 ‘바른’ 판결을 요구하며 제기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역사/수정주의] 역사를 어떻게 서술해야 하는가
입력 2015-11-05 18:13 수정 2015-11-05 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