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국정교과서 일정 발표] “史實 입각한 기술” vs “역사동향 파악 의문”

입력 2015-11-04 22:31 수정 2015-11-04 22:57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정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과 집필진 구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대표 집필자인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김 위원장 옆에서 발표 내용을 듣고 있다. 서영희 기자

‘국사 교과서는 전 국민의 교육서다. 따라서 국민적인 포용성을 보여야 한다. 자율적인 한국사관을 정립하려면 딱딱한 국정보다는 일정한 틀 아래서의 검인정이 바람직하다. 교과서는 국가(정부)의 저작이 아니며, 정치적 입장이나 현실적 욕구가 반영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글은 신형식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1987년 ‘중등학교 국사 교과서 내용상의 제(諸) 문제’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논문에 수록된 내용이다. 신 명예교수는 2017년 3월 도입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국정 역사 교과서)의 대표 집필자에 포함됐다.

정부가 공개한 대표 집필자 두 명은 신 명예교수와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다. 학계는 중진 역사학자 대부분이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고 있어 불가피하게 은퇴한 지 오래된 원로 학자들을 내세운 것으로 보고 있다.

국사 교과서를 ‘민족의 거울’로 지칭한 신 명예교수는 4일 국사편찬위원회가 마련한 기자회견에 집필자 중 유일하게 참석했다. 그는 “보다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내용으로 우리 국사가 국민에게 가까이 갈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18년 전의 소신과 정반대 입장에 선 것이다.

서울대 역사교육과 출신인 신 명예교수는 보수적 성향의 주류 사학자로 분류된다. 1994년 국사편찬위원, 95년 경기도 문화재위원, 97년 한국고대학회장을 역임했다. 2004년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한 뒤에는 서울시 역사자문관, 서울시 시사편찬위원장 등을 지냈다. ‘한국사 입문’ ‘알기 쉬운 한국사’ 등 여러 편의 역사서를 저술했고 동북공정이 어떻게 한국사를 왜곡했는지 지적하기도 했다.

고대사를 전공한 신 명예교수는 ‘올바른 역사 교과서’의 고대사 분야를 대표 집필하게 됐다. 그는 2013년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던 교학사 역사 교과서를 옹호하는 기자회견과 성명에 참여했고, 최근 언론 인터뷰에선 “전교조가 세다 보니 대한민국 정통성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했었다.

역사학계 원로인 그에 대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언급이나 평가를 꺼렸다. 다만 은퇴한 지 오래돼 최근 역사 연구의 동향과 결과물을 제대로 교과서에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 역사학과 교수는 “삼국사기 연구를 주로 해서 고구려사, 발해사 책을 내고 강의도 많이 했지만 딱히 학계에서 목소리를 크게 내거나 하지는 않았다”며 “고대사 전체를 보는 시각은 있지만 개별 분야에 대해 뚜렷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다”고 평가했다. 이어 “많은 젊은 학자들이 반대해 정부 차원에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명예교수는 교과서의 상고사 분야 집필을 맡을 전망이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를 졸업한 그는 72년 26세에 전남대 전임강사로 교단에 섰다. 81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에서 교편을 잡는 등 40년간 교수생활을 한 ‘최장수 고고학자’다. 87년 한국상고사학회를 창설하고 ‘한국고대국가 형성론’ ‘인류문명 발달사’ ‘한국 고고학 연구의 제 문제’ 등 저서를 냈다.

최 명예교수는 88년부터 23년간 5∼7차 교육과정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 편찬에 참여했다. 그는 2012년 2월 제자들이 마련한 정년퇴임식에서 “매년 새로운 자료에 바탕을 두고 보완해 나가는 데 중점을 둬 거의 매년 교과서 기술을 바꿨기 때문에 고교 국사 선생님들이 저를 매우 싫어한다는 말을 듣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 명예교수는 이날 언론과의 통화에서 “내가 맡을 부분은 전체 분량의 7% 정도일 것”이라며 “아마 상고사와 고대사를 같이 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새 교과서는 그동안 나왔던 새로운 자료들을 살펴 다시 써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서는 “현대사 부분의 많은 논란에 대해서는 그 분야 분들에게 물어보라”며 답변을 피했다. 다만 “(교과서 문제에 관해) 정부를 믿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역사학계에서 최 명예교수를 바라보는 시선은 우려에 가깝다. 익명을 요구한 역사학자는 “90년대에도 기존 글을 되풀이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은 분이다. 공부를 접은 지 오래된 터라 최근의 연구 동향을 충실히 담아내기보다는 건조하게 역사적 사실만 쓰는 정도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 “국정 역사 교과서를 반대하는 중진 학자들이 워낙 많아서 원로급을 대표 집필자로 내세운 것 같은데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박세환 전수민 김판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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