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문화 확산, 법·정책 재정비가 답이다] 모금기관, 회계는 물론 직원 급여까지 명시해야

입력 2015-11-04 18:39 수정 2015-11-04 21:07
미국 최대의 국제구호개발NGO연합체 인터랙션의 바바라 월러스 부회장은 “신용이 보장된 NGO의 연합체는 기부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워싱턴DC=이사야 기자
미국 국세청의 표준재무신고 990양식(Form990). 990양식에는 단체의 수입·지출내역은 물론 이사회, 직원 현황, 정책, 활동내역을 명시해야 한다. 미 국세청 제공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장애인 욕창 환자를 돌보지 않아 숨지게 하고 기부금을 횡령한 혐의(유기치사 등)로 기소된 장애인 복지시설 원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또 경찰은 경기도 고양의 한 장애인 후원단체가 텔레마케터 11명을 고용해 11억5000여만원을 기부 받은 뒤 직원들과 나눠 가진 사실을 적발하기도 했다.

기부금이 본래 목적에 따라 사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기부자들은 모금단체를 신뢰하지 않고, 자연스레 기부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미국은 국세청(IRS)으로부터 세금감면 조항인 ‘501(c) 자격’을 받은 단체들에 대해 표준재무신고 990양식(Form990)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모금기관이 기부금 사용과 기관 운영 내역을 정직하고 투명하게 공개토록 하기 위해서다.

◇구체적인 정보공개가 핵심=990양식에 들어가는 항목은 단체의 수입·지출내역은 물론 이사회, 직원 현황, 정책, 활동내역에 관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이사회와 관련해서는 회의록을 작성하는지 여부와 직원 현황의 경우 10만 달러 이상 급여를 받은 전·현직 임직원의 명단, 평균 근로시간까지 명시토록 돼 있다. 3년 연속 제출하지 않을 경우 면세 자격이 박탈된다.

제출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평가·감시(Watch Dog) 기능을 하는 기관도 활성화돼 있다. 대표적인 곳이 ‘채리티 내비게이터’와 ‘가이드스타’다. 채리티 내비게이터는 990양식과 별도로 받은 정보를 통해 기관의 성격을 분류하고 등급을 매긴다. 모금을 한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는 물론 모금을 하는 단체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정보도 기부자들에게 공개함으로써 신용도를 높이고 기부 활성화로 이어지게 한다.

우리나라도 국세청에 기부금품 모집 및 지출명세서를 제출하고 이를 공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공시시스템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은 기관의 기부금 수입과 지출 명세에 불과하다.

정무성 숭실대 교수는 “모금주체들의 투명한 경영과 전문적 후원자 관리가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며 “비영리 조직은 투명한 경영과 모금에 대한 전략을 개발하고 정부는 기부환경 조성을 위한 합리적인 법 제정과 제도개선에 앞장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아름다운재단 장윤주 간사는 “기부금을 내는 것으로 기부자로서 임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며 “그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기금을 사용하는 기관의 발전가능성이 있는지를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도록 모금기관들의 운영현황을 보다 자세하게 공개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건강한 비영리 조직의 집합체 형성=“투명성이 보장된 비영리 조직들이 모일 때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으며 기부문화도 활성화된다.” 지난 9월 23일 미국 워싱턴DC에서 만난 인터랙션 바바라 월러스 부회장의 말이다. 인터랙션은 미국 최대의 국제구호개발NGO연합체로 189개의 NGO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회원들은 매년 180억 달러 이상을 모금·관리하고 있다.

회원이 되려면 기본적으로 ‘501(c) 자격’을 받아야 하며 독립적인 공인회계사로부터 재정과 소득·지출에 대한 감사를 받아 연간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재정을 감독하는 이사회도 갖춰야 한다.

회원에겐 다양한 혜택이 있다. 월러스 부회장은 “신용이 보장된 만큼 인터랙션의 회원임이 알려지면 인지도가 상승하고, 모금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밝혔다. 인터랙션은 매년 전체 회원의 임직원들이 모이는 콘퍼런스를 개최해 회원 간 정보를 교환하고 비슷한 분야에 관심을 둔 회원단체가 파트너십을 맺도록 독려한다.

각 NGO 대표들을 초청해 각 단체의 운영 노하우와 주요 이슈를 공유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만들고 있다. 월러스 부회장은 “대표들이 만날 때에는 일명 ‘안전 공간’을 만들어 그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도록 돕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NGO는 영리단체와 달리 모은 자본을 소진하면 다시 모금을 해야 하기 때문에 기부금 모금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적대관계가 되기 쉽다”며 “때문에 소통의 장을 열어 공생하는 법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DC=이사야 기자 Isaia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