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금호 계열사 부당지원 ‘무혐의’ 결정

입력 2015-11-04 19:53

공정거래위원회가 2009년 금호아시아나그룹 유동성 위기 당시 계열사끼리 기업어음(CP)을 거래해 부도를 막은 부당지원행위 의혹 사건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계열사 간 CP 매입의 정당성 여부를 판단하는 첫 사례로 향후 구조조정을 명목으로 내건 대기업들의 부당 내부거래에 면죄부를 줄 것이라는 우려가 일고 있다.

이번 사건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호는 당시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사들였다. 2008년에는 대한통운마저 4조6000억원에 인수했다. 그러나 ‘승자의 저주’가 뒤따르면서 2009년 금호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직면했다. 금호는 그해 12월 30일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워크아웃을 신청했고, 당일 금호석유화학 등 8개 계열사가 만기가 도래한 두 회사의 CP 1336억원어치를 만기 연장해줬다.

이로 인해 두 회사는 법정관리까지 가지 않을 수 있었지만, 만기를 연장해준 8개 계열사들은 향후 금호산업의 채무재조정 등으로 실질적인 손해를 봤다. 공정거래법은 그룹이 계열사로 하여금 다른 회사 유가증권을 유리한 조건으로 거래하게 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공정위는 그러나 부당지원행위 심사지침 예외조항을 근거로 당시 행위가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지침은 대기업 계열사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손실부담을 위해 불가피한 범위 내에서 지원하는 경우는 부당지원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당시 CP 만기가 연장되지 않아 워크아웃이 이뤄지지 않았다면 CP 가치가 폭락해 CP를 들고 있는 계열사들이 더 큰 손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측면도 고려했다.

일각에서는 공정위가 심사지침상 예외규정까지 근거로 삼아 무혐의 처분을 한 데 대해 대기업의 부당내부거래가 늘어날 것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경제개혁연대는 4일 “앞으로 대기업 부당지원행위의 광범위한 사각지대가 형성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번 공정위 결정에 형제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 측과 금호석유화학그룹 측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박삼구 회장의 금호아시아나 측은 “이번 결과로 당시 CP 발행 및 매입이 합리적이고 정당한 경영 판단이었음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고 밝힌 반면 박찬구 회장의 금호석유화학은 유감을 표명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피심인(불공정행위 혐의자)이 무혐의를 받았다고 유감을 표명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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