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강준구] 결과 올바르면 과정 상관없나

입력 2015-11-04 22:16 수정 2015-11-04 22:25

정부의 중·고교 역사 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지켜보며 정말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하나 있다.

정부의 가장 큰 명분은 현행 교과서가 성공적인 민주화·산업화의 역사 대신 잘못된 패배의식을 어린 학생들에게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럴 수도 있겠다. 유행어 ‘헬조선(지옥+조선)’으로 대표되는 청년세대의 비관이 국가적 자긍심을 부정하는 교육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 외에도 없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성공적인 민주화를 이뤄낸 우리 사회엔 이를 바로잡을 절차도 마련돼 있다. 교육부는 2008년 ‘종북’ 논란을 야기한 금성출판사 역사 교과서에 수정 명령을 내렸다. 집필진이 법원에 수정명령 취소청구 소송을 낸 뒤 정부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절차상 미비점 탓이다.

정부는 2013년 절차를 보강해 다시 8종 교과서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다. 역시 집필진이 소송을 냈지만 이번엔 정부가 2심까지 모두 이겼다. 지난 9월 법원은 “수정명령 필요성도 인정되고, (형식도) 교육부 재량 안에서 적법하다”고 판시했다.

따라서 정부는 남은 대법원 판단을 받아 문제를 수정하면 될 텐데, 이상한 건 그 다음부터였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3일 대국민 담화에서 “정부가 수정 권고·명령을 내려도 집필진이 소송을 일삼아 논란만 키운다”고 비판했다. 민주사회의 법적 절차를 따랐고 대법원 판단도 남은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을 역임한 총리가 내놓은 군색한 비판이다.

정부는 예정보다 이틀이나 빨리 국정화도 확정 고시했다. 정부가 반대 여론이 아닌 시간과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국정 교과서가 도입되는 2017년은 사실상 현 정부 임기 마지막 해다. 학계의 컨센서스도 무시한 채 ‘올바른’ 결과를 위해선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민주적 절차는 간소화해도 된다는 정부 태도도 우려스럽다. 결과가 올바른지조차 훗날 역사학계의 판단을 받아야 할 일이지만.

강준구 정치부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