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오스해운 문식(56) 대표는 지난해 5월 필리핀 카지노에서 42억원을 날렸다. ‘홍콩달러 게임’이란 도박에 빠진 결과였다. 필리핀 페소화 칩으로 게임한 뒤 정산은 5.5배 가치의 홍콩달러로 하는 변종 바카라다. 당시 켄오스해운이 외환은행 등에서 꾼 운전자금 등 부채총계가 43억원 수준이었다. 그는 날린 돈을 갚기 위해 회삿돈 7억원을 횡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4월부터 해외 원정도박 수사에 주력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부장검사 심재철)는 4일 문 대표를 구속 기소하는 등 총 12명의 기업인을 재판에 넘기는 것으로 수사를 마무리했다. 수사 결과 문 대표 등 기업인들이 마카오·필리핀 등 동남아 카지노에서 탕진한 돈은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손이 큰 기업인들은 불과 몇 초 만에 끝나는 바카라 도박 한 판에 3억원을 걸었다.
화장품업계의 신화로 일컫던 네이처리퍼블릭 정운호(50·구속 기소) 대표가 101억원대 해외 원정도박을 벌였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수사 결과였다. 경기침체 속에서 위화감을 조성한 기업인들을 바라보는 국민적 시선은 더욱 싸늘해졌다. 검찰은 “원정도박은 사행성을 조장하고 국부를 유출하는 중대 범죄”라며 “기업가정신과 국민적 기대를 배신한 것”이라고 평했다.
이제는 뒤안길로 사라진 줄 알았던 ‘갈취형 조폭’의 신종 자금원을 밝혔다는 점도 원정도박 수사의 성과로 평가된다. 검찰은 고액 원정도박 VIP룸인 ‘정킷방’을 운영한 간부급 폭력조직원 9명을 구속 기소했다. 강원랜드의 출입·베팅 제한에 만족하지 못하던 기업인들을 ‘정킷방’으로 꼬였고, 이들이 바카라를 할 때마다 폭력조직의 운영자금은 쌓여갔다.
마카오 카지노는 광주송정리파, 충장OB파, 방배동파 등 범서방파 계열이 장악하고 있다. 필리핀은 양은이파 계열 ‘학동파’, 캄보디아는 범서방파 계열 ‘영산포파’ 등이 활동 중이다. 베트남에도 전문 브로커들이 진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원정도박을 지속적으로 단속하는 동시에 최근 늘어난 인터넷 도박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기업인 12명 원정도박 500억 탕진
입력 2015-11-04 2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