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역대 최상 韓·中 관계에 솟아오른 ‘배타적 경제수역’ 암초… 서해상 대국굴기 신호탄인가

입력 2015-11-04 21:53

‘역대 최상’인 한·중 관계에 이어도라는 ‘암초’가 솟아올랐다.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가 한·중 정상회담에서 해양경계획정 회담 재개를 제안하면서 그동안 잠잠했던 한·중 간 ‘배타적 경제수역(EEZ)’ 갈등이 수면 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리 총리 발언이 그동안 지지부진했던 해양 경계선 논의를 가속화하자는 제스처일 뿐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반면 외교가 일각에서는 “중국이 남중국해와 마찬가지로 우리 측에 ‘힘의 외교’를 걸어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고개를 든다.

겉보기에 이어도 인근 해역은 미·중 간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남중국해와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중국은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의 암초와 산호초에 인공섬을 건설 중이다. 우리 정부 역시 이어도에 2003년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으며, 중국 측은 당시 우리 측에 공식 항의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중국은 이 인공섬을 ‘영토’라며 인근 12해리(약 22㎞) 해역을 ‘영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이어도는 ‘암초’이며 이어도 기지는 ‘인공구조물’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평소 바다 밑에 있다가 가끔씩 수면 위에 모습을 드러내는 이어도는 국제법상 영토가 될 수 없으며, 이 위에 구조물을 짓더라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한·중 양국은 이어도에 “영토 문제는 없으며 해양경계획정 문제만 존재한다”고 오래전에 선을 그었다.

본질은 이어도라는 암초를 둘러싼 분쟁이 아니라 이어도 주변을 포함한 한·중 간 EEZ 획정 문제다. 유엔해양법 협약은 각국이 연안에서 200해리(약 370㎞)까지 EEZ를 설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한·중, 한·일 간 바다의 폭은 400해리에 못 미친다. 이런 경우 유엔해양법은 각국이 협의를 거쳐 EEZ를 획정하도록 권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한·중·일 간 EEZ 획정 문제는 답보 상태다. 정부는 중국과 ‘잠정조치수역’을, 일본과 ‘중간수역’을 설정했으나 역시 미봉책이다.

중국은 이 문제가 잊혀질 만하면 과학조사선이나 정찰기를 이어도 인근 해역에 보내 “이 바다는 중국 해역”이라며 ‘눈도장’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 관계가 좋을 때를 노려 자신들의 ‘해양굴기(海洋?起)’를 우리 측에 강요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차분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4일 “영토문제든 해양문제든 쉽게 답이 나올 문제가 아니다.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겁을 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다만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목소리를 더 내고 있다는 점에는 대비가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우리 정부 또한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 당국자는 “(국가 간) 회담이 하루아침에 끝나는 건 아니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면서 “처음에는 각자 자기 수역을 주장할 테지만 하나씩 단계적으로 협의해 나갈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처럼 수년이 소요되는 장기전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조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