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출산한 뒤 부쩍 허리와 목, 어깨에 통증을 느끼던 김모(35)씨는 얼마 전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가 ‘운동치료’를 권유받았다. 의사는 “평소 자세가 바르지 않은 데다 출산 후 살이 쪄서 증상이 악화되고 있으니 다이어트도 할 겸 메디컬 필라테스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상담실장은 “치료용 필라테스는 기구를 이용한 도수치료(맨손으로 하는 통증 치료)의 일종이라 (실손의료)보험 처리가 된다”고 말했다.
김씨는 그간 들어둔 실손보험의 혜택을 누릴 기회라 여겨 1주일에 두 차례씩 필라테스 치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건강보험 혜택을 볼 수 없는 비(非)급여 항목이었지만, 실손보험이 치료비를 보상해준대서다. 그런데 한방 병·의원에선 같은 성격의 치료를 하고도 건강보험 비급여 부분에 대한 보험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일고 있다.
문제 제기의 주체는 대한한의사협회(회장 김필건)다. 김필건 회장은 최근 한방 의료서비스에 대한 건강보험 보장률이 아주 낮은 현실에서 실손보험에서도 제외되는 차별대우를 받고 있어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9월 중순 금융감독원에 대한 국회 국정감사 때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이 한방 진료를 실손보험 적용 대상에서 왜 빼놓고 있는 것인지 추궁한 게 발단이 됐다. 이에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도 금감원 측에 치료 범위가 명확한 한방 치료의 경우 실손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권고한 바 있다.
금감원은 2009년 실손보험 표준약관 제도를 새로 도입하면서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비를 실손보험이 보장해주는 대상에서 한방 및 치과 치료를 제외했다. 당시 금감원은 한방의 경우 질병 치료가 목적인지, 건강 유지를 위한 체질 개선이 목적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제외 이유를 밝혔다. 표준화가 안 된 탓으로 의료기관 간 재료대와 치료비 편차가 큰 것도 빌미로 삼았다.
하지만 한의사협회는 이에 대해 국민의 의료기관 선택권, 의료서비스의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항변하고 있다.
공보험인 건강보험에서 보장해주지 않는 비급여 진료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국민이 찾는 것이 실손보험이다. 금감원이 2007년 처음 보험 상품 판매를 허용한 이후 지금까지 3400만여명이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실손보험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이유다.
한방 진료는 건강보험 비급여 진료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의료서비스다. 그래서 건강보험이든 사보험 영역의 실손보험이든 둘 다 확대 적용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의사협회는 치료 목적과 범위가 분명치 않아서 적용하기 어렵다는 금감원과 보험업계의 주장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다행히 금감원은 “한방 비급여 진료비에 대한 실손보험 보장을 ‘특약’ 형식으로 제도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도수치료와 비슷해서 적용 대상 질환과 치료 범위를 도식화하기 쉽고 이용자도 많아 2018년 건강보험 적용 대상으로 편입될 예정인 추나 치료부터라도 시범적으로 해보면 어떨까.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건강보험의 보장률(전체 진료비 가운데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을 높이는 것이다. 건강보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그만큼 실손보험의 필요성이 줄어들고 국민 의료비 상승도 억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의계도 약재에 따라 치료비가 천차만별인 한방 의료서비스를 표준화하는 일에 더욱 박차를 가해 금감원과 보험업계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kslee@kmib.co.kr
[내일을 열며-이기수] 한방진료는 보험이 안 된다?
입력 2015-11-04 17:50 수정 2015-11-05 00: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