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박근혜정부의 외교력이 돋보이고 있다. 9월 3일 중국 열병식 참가와 한·중 정상회담, 10월 한·미 정상회담, 한·중·일 정상회담과 한·중, 한·일 정상회담을 잇달아 개최한 것이다. 중국 방문에서 한·중·일 회담 참가를 얻어냈고, 미국 방문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했다. 중국 미국 일본을 설득하면서 외교적 주도권을 과시한 것이다. 미·중 갈등 속에서 제자리 찾지 못하는 한국외교 위기론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한 외교행보였다. 박근혜정부의 외교정책으로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평화구상,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은 초보단계지만, 가시적인 성과를 올렸다고 긍정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한·일 정상회담은 3년5개월 만에 열렸다. 노무현정부는 취임 후 4개월, 이명박정부가 2개월, 박근혜정부에서 무려 33개월이나 걸렸다. 만시지탄이지만 냉각된 한·일 관계의 경색국면을 타개한 것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핵심 쟁점이었던 위안부 문제는 사실상 평행선을 달렸다. 두 나라 정상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해결해 나가자는 일본 측 반응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한·일 정상회담의 결론은 “가능한 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해결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전후 보상은 끝났다는 일본정부 입장은 바뀐 게 없다. 양국 국장급 협의를 그저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정해진 기한도 없다. 협의기구를 차관급으로 격상시키지도 못했다. 일본정부는 아시아여성기금에서 남은 금액을 가지고 인도적 차원에서 금전 보상한다는 선에 머물러 있다. 이번 협상을 최종 해결로 간주하며 두 번 다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과 국내외 설치된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다.
해법은 무엇인가. 첫째, 위안부 문제를 양국 간 의제들 가운데 하나로 관리해 가는 것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한·중·일 FTA와 TPP 가입, 한·일 청소년 교류와 문화협력 등 다양한 분야의 현안 중 하나로 본다. 위안부 문제를 너무 부각하면 일본 측은 위로금 차원에서 개인보상을 시도하고 또다시 시민단체와 피해자는 거부할 것이다. 아시아여성기금의 실패경로를 반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둘째, 한·일 양국이 외교적 협상을 모색하는 것이다. 위안부 해법이 실패로 끝날 경우 한·일 외교는 트라우마로 남는다. 내년에 평균 90세인 위안부 피해자의 고령화도 생각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 7월 참의원선거 일정도 부담이다. 내년 하반기엔 차기 대권경쟁이 시작된다. 위안부 문제가 부각될 가능성은 낮다. 일본정부도 차기 정권과 대화하고자 할 것이다. 해법 도출이 어려워진다.
남겨진 유일한 해법은 무엇인가. 양국 정상이 국내 비난을 무릅쓰고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현 정권이 정치적 부담을 안고 해법을 도출하는 것이다. 한국정부가 일본의 법적 책임을 유보하고, 아베 총리의 사죄 편지, 일본정부 기금으로 개인보상, 주한 일본대사의 피해자 방문이라는 ‘사사에안’을 적용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매주 수요집회를 이어가고, 소녀상을 추가로 설치하고, 위안부 실태 교육을 공교육에서 강화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시민단체가 일본을 부도덕한 국가로 비난하고 한국정부도 국제외교에서 일본군 성노예제를 비난하는 것이다. 영구미제로 남겨서 일본의 도덕성을 끊임없이 문제 삼는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미래지향적인 한·일 관계에 초점을 맞춰 실용외교를 이어갈 것인가. 투 트랙을 유지하면서 대일 외교에서 빈번히 위안부 문제를 쟁점화할 것인가. 한·일 정상의 정치적 결단이 시험대에 올라 있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
[시사풍향계-양기호] 위안부 해법 도출 가능한가
입력 2015-11-04 17:51 수정 2015-11-04 2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