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국경을 탐사한 끝에 우리는 다른 국가에 비해 한국인에게 호의적인 베트남을 향해 탈북형제 13명과 함께 떠났다. 육로는 지뢰가 많아 강이 흐르는 국경을 택했는데 거센 물살에 떠내려갈 것 같아 동아줄을 베트남과 중국 쪽 나무에 묶은 뒤 그것을 잡고 건너기로 했다. 중국 쪽에선 남편과 동료 두 사람이, 베트남 쪽에선 다른 동료 한 명이 탈북형제들을 돕기로 했다. 그들이 국경을 넘는 동안 관광객으로 위장해 베트남 국경수비대를 따돌리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잠시 눈을 질끈 감고 나는 국경수비대를 향해 손을 흔든 뒤 숲으로 냅다 뛰었다. 예상은 했지만 5분도 안 돼 뒷덜미를 잡혔다. 국경의 작은 초소에서 신문을 받으면서 시간을 버는 동안 탈북형제들이 무사히 국경을 넘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그 바람은 처참하게 무너졌다. 탈북형제들은 얼마 가지 못해 국경수비대에 붙잡혔다. 베트남 군인들은 본격적인 신문을 위해 우리를 큰 부대로 이송하려 했다. 진술이 엇갈릴 것에 대비해 오직 나만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했고 그들은 고민 끝에 나만 큰 부대로 데려갔다.
부대로 이송된 후 나는 12명의 군인이 둘러앉은 신문실 가운데에 통역관과 함께 앉았다. 너무 무서워 “하나님, 도와주세요”라는 기도밖에 드릴 수 없었다. 그런데 잠시 후 누군가 나를 무릎에 앉히고 뒤에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군인들이 무섭게 신문하면 할수록 포근한 느낌은 더 강해졌고 그때마다 미소가 절로 나왔다.
나의 기이한 행동을 보고 군인들은 ‘대한민국에서 온 정신 나간 관광객’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그때 키 180㎝가 넘는 중견 간부가 벌떡 일어섰다. 그가 보기에 나는 너무 수상한데 다른 군인들이 모두 속고 있어서 화가 난 듯 보였다. 그는 내게 따라오라며 손짓하더니 작은 쪽문으로 들어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문을 잠갔다. 희미한 백열등 때문에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는 음흉한 눈빛으로 나를 훑어보았다.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머릿속에는 온갖 불길한 상상이 맴돌았다.
‘성경에서 신혼 1년은 전쟁터에도 나가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신혼기간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께서 탈북형제들만 사랑하시고 나는 험한 일을 당해도 괜찮으신가?’
불길한 상상에 서글픈 생각까지 더해지던 그때 누군가 내 머리를 한 대 내려치는 것 같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 내가 믿는 하나님은 그런 힘없는 분이 아니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어디서 그런 담대함이 샘솟았는지 나를 음흉하게 쳐다보는 군인을 향해 그가 하는 것처럼 똑같이 위아래로 쳐다보며 웃었다. 그렇게 눈으로 기를 뿜어내며 서로를 쳐다보기를 5분여. 간부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비비는 시늉을 했다.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내게는 국경을 넘을 때 필요한 물건들을 구입하면서 생긴 잔돈들이 겉주머니마다 있었다. 20달러를 쥐어주니 그는 신이 나서 밖으로 나갔다. 문밖에는 조금 전까지 나를 신문하던 군인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200달러 정도를 나눠줬더니 그들은 우리를 모두 풀어줬다. 허겁지겁 그곳을 탈출했다. 안전지대에 와서야 하나님께서 죽을 고비에서 우리와 함께하셨다는 것에 감사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만약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 탈북여성이었더라면, 내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분이 어떤 분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아찔했던 그 일을 떠올리니 탈북여성들이 겪고 있을 고통에 더욱 가슴이 아파왔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조명숙 <9> 탈북자 13명과 국경 넘다 베트남 군인들에 붙잡혀
입력 2015-11-04 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