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에 사는 주부 김모(31·여)씨는 최근 길이 20㎝, 폭 5㎝ 크기의 벽걸이형 옷걸이를 샀다가 배달된 택배 상자를 보고 깜짝 놀랐다. 상자는 주문한 제품이 스무 개는 넉넉히 들어갈 만한 크기였다. 택배 상자를 열었더니 조금 작은 상자가 들어 있었고, 그것을 열자 더 작은 상자가 나왔다. 옷걸이는 그 안에 있었다.
서울 송파구의 윤모(31·여)씨는 최근 한 소셜커머스업체에서 3만원 상당의 각종 생필품을 주문했다가 ‘택배 폭탄’을 맞았다. 7가지 물품을 한 번에 주문했는데 배송은 제품별로 각각 다른 상자에 담겨 왔다. 윤씨는 “배달 과정에서 제품 파손을 막기 위해서라지만 환경을 생각하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재활용 분리배출을 하더라도 상자가 재활용되려면 꽤 오랜 과정이 필요할 텐데 낭비가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온라인 쇼핑 등 택배를 이용한 소비 행태가 생활 깊숙이 자리 잡으면서 과도한 크기의 상자, 두 겹 세 겹씩 싸는 포장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일 한국통합물류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택배 물량은 16억2325만개로 추산된다. 지난 9월 경제활동인구(2712만9000여명)를 기준으로 하면 국민 1인당 연간 약 60개의 택배 상자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정부는 자원 절약을 위해 포장 폐기물을 규제하고 있다.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9조에는 포장 폐기물 발생 억제를 위한 내용이 담겨 있다. 포장재질이나 포장방법(포장 공간 비율과 횟수)에 대한 기준이 명시돼 있다. 음식료품, 화장품, 세제, 잡화, 의약외품, 의류, 농산품 등 대부분 제품이 해당된다.
하지만 하위 법령인 ‘제품의 포장 재질, 방법에 관한 규칙’에 따라 ‘수송을 목적으로 하는 제품 포장’은 이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 상품 자체의 포장이 아닌 재포장 택배 상자는 포장 폐기물 규제를 받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송하면서 파손되면 소비자 불편이 크기 때문에 따로 규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제품 보호를 위해 상자에 함께 넣는 충전재도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스티로폼이나 비닐 안에 공기가 들어 있는 주머니 형태, 일명 ‘뽁뽁이’로 불리는 포장용 에어캡은 배달 즉시 재활용 분리수거함으로 들어가기 일쑤다. 냉장식품이 배달될 때 함께 오는 젤 형태의 아이스 팩 또한 처치 곤란이다. 비닐을 뜯지 않고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려야 하는 것과 내용물을 뜯어 수분을 따라버린 뒤 포장지를 따로 비닐류로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 것으로 나뉘는데, 소비자들이 이를 정확히 확인하고 처리하기는 쉽지 않다.
김태희 자원순환연대 기획팀장은 “제품마다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상자를 획일화할 수는 없겠지만 상자 크기를 세분화해 규격화하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며 “튼튼하게 제작되는 포장재를 최대한 재사용하는 방향으로 정부가 계도와 홍보를 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미나 기자 mina@kmib.co.kr
[기획] 택배 상자, 너무합니다…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
입력 2015-11-03 22:37 수정 2015-11-03 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