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 A씨(36)는 지난해 6월 일곱 살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남편 B씨(40)와 별거를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이혼소송을 냈다. 남편의 경제적 무책임과 그로 인한 불화를 이유로 들었다. 영업직 회사원인 B씨는 당시 개인회생절차를 밟고 있었다. 부부는 매달 150만원씩 빚을 갚아야 하는 처지였다.
재판 절차에 들어가기 전 가정법원 가사조사관과 면담한 B씨는 아내에게 갖고 있던 분하고 서운한 마음을 털어놨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지자 A씨가 계획적으로 가출한 것 같다는 얘기였다. 이혼과 재산분할 내용은 동의하지만 자녀 양육권은 넘겨줄 수 없다고 했다.
조사관은 “B씨가 감정적으로 격해져 있지만 A씨가 어머니로서 자녀 양육을 잘했던 점은 인정하고 있다”며 “면접교섭권과 현실적인 양육비를 책정한다면 양육권 조율이 가능해 보인다”는 의견서를 냈다. 본격 소송에 들어가면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격해져 채무분할을 주장하는 등 원만한 협의가 더욱 힘들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달았다.
법원은 사건을 조정 절차에 회부했다. 지난 4월 2차례 조정 끝에 두 사람은 이혼에 합의했다. 위자료와 재산분할 청구 대신 각자의 명의로 된 재산만 가져가기로 했다. 문제가 됐던 양육권은 아내가 갖되 남편은 한 달에 두 번 아들을 보기로 했다. 또 향후 4년간 매월 60만원, 이후부터는 아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 매월 120만원 양육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이처럼 법원이 이혼 과정에 적극 개입해 당사자 간의 조정·화해를 이끌어내는 사례가 최근 10년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3일 ‘2015 사법연감’과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법원이 처리한 이혼소송 4만1476건 중 1만7069건이 조정이나 화해로 종결됐다. 41.2%나 된다. 2005년 24.0%에 그쳤던 조정·화해율이 10년 만에 2배가량 높아진 것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가정법원이 더 이상 이혼사건의 결론만 내리는 곳이 아니라 불화의 원인과 이혼 이후 생활 등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윈-윈’ 결론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며 “재판에서 감정싸움으로 격화하기 전에 원만하게 합의이혼하거나 재결합하는 경우도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가정폭력 사건 등에서도 법원과 수사기관의 개입이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법원에 접수된 가정보호사건은 9489건으로 2010년 3257건에 비해 3배 가까이 증가했다. 상해·폭행으로 인한 사건이 81.6%로 대부분을 차지했고 협박, 재물손괴, 유기·학대·아동혹사 등이 뒤를 이었다. 법원은 접근행위제한 조치인 1호 처분부터 상담위탁을 맡기는 8호 처분까지 가정별 상황에 맞춰 보호처분 결정을 내린다.
한편 혼인생활을 20년 이상 유지한 이른바 ‘황혼 이혼’이 지난해 전체 이혼 중 28.7%를 차지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 미성년 자녀가 없는 부부의 이혼율이 처음으로 전체의 절반(50.4%)을 넘어섰다. 이혼 사유는 성격차이가 가장 많았고, 경제문제와 배우자의 부정이 뒤를 따랐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
판결로 말한다?… 법원 ‘대화로 해결’도 늘었다
입력 2015-11-03 2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