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2일 오전 랴오닝성 다롄시내를 출발해 선양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1시간 조금 넘게 달리자 임항공업구가 있는 창싱다오로 들어서는 6차로 도로로 접어들었다. 피창(皮長)고속으로 불리는 이 도로는 중국 정부가 창싱다오에 자리 잡은 STX조선을 위해 만들어준 도로라고 한다. 이날 앞뒤에 다른 차들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2008년 말 준공된 STX다롄조선소는 2010∼2011년 호황을 누렸다. 100여척을 수주해 이곳에서 73척을 건조했다. 리커창 중국 총리가 2005년 랴오닝성 서기로 재직할 당시 STX그룹의 투자를 유치했던 곳이다. 한때 직영과 외주 직원을 합해 근무 인원이 2만명을 넘은 때도 있었다. STX그룹의 몰락과 조선업 침체의 영향으로 현재는 직원 수십명만 남아 마지막 정리 작업을 진행 중이다. STX다롄의 한 관계자는 “만약 STX다롄이 중국 국영기업이었다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선업은 금융권의 지원이 없으면 살아남기 힘들다”면서 “STX다롄이 문을 닫게 된 결정적 이유는 중국 은행이 대출 연장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TX 측은 창싱다오에 3조원가량을 투자했지만 지난해 6월 법정관리 후 평가액은 40억∼50억 위안(약 7000억∼9000억원)에 불과하다. 그나마 공개 입찰에 두 번이나 실패하면서 평가액은 더 많이 떨어진 상태다.
다롄신항만에 위치한 경제기술개발특구에는 한국의 조선 기자재 업체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있다. 한때 10여개 업체가 입주해 있었지만 현재는 한국 모기업에서 일감을 줄 수 있는 두산선기 등 2∼3개 업체를 제외하면 모두 정리됐다. 대양선박(수리조선소), 평산중공업(풍력발전기와 선박 부품 업체), 캐스코(주물 제조), 동방정공(선박 상부구조물 제작) 등이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이날 찾은 선박배관 전문 업체인 동방선기 다롄 공장 곳곳에는 녹슨 배관 파이프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2004년 다롄 법인 설립 이후 한때 450명까지 직원이 늘었지만 현재는 6명만 남아 공장 매각 작업을 하고 있다. 최재녕 법인장은 “싼 노동력을 보고 중국에 왔지만 한국에서 1명이 할 일을 중국은 5명이 필요해 원가 절감에 그다지 도움이 안 된다”면서 “중국 기업에 납품하는 것도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 판로 확보가 여의치 않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국 업체들이 헐값에 속속 중국 기업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지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동방정공 대양선박 캐스코 모두 정상적인 매각은 아니었다. 동방정공은 18억 위안(약 3200억원)의 자산가치가 있지만 1억 위안(약 178억원)을 받고 중국 업체로 넘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수출에서 소비로 성장동력을 옮김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들의 중국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중국에 공장을 세워 생산 기지로 활용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것이다. 백인기 코트라 다롄무역관장은 “이제 제조업으로 중국에 와서 승부를 보기는 어려워졌다”면서 “중국 소비자를 직접 겨냥해야 하지만 중국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는 기술과 열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롄=글·사진 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르포-위기의 中 경제… 진출한 국내 기업 다롄 르포] 문닫는 한국업체 헐값에 팔려나가
입력 2015-11-03 2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