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시리아의 간호사 출신인 낸시 아흐메드는 터키 이즈미르 해안가에서 난민 밀항업자한테 ‘반값 할인’ 제안을 받았다. 그리스 해안까지 가는 뱃삯이 1700달러(약 192만원)인데 850달러(약 96만원)만 내라는 것이었다. 비바람이 치는 등 위험해서 할인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밀항업자는 “내일 아침에 날씨가 좋아지면 1700달러를 내야 하는데 알아서 판단하라. 아이(11살)는 공짜로 태워주겠다”고 거듭 제안했다. 낸시는 고무보트를 탔고, 그 보트는 딱 1시간 동안 조종 훈련을 받은 이라크 출신 또 다른 난민이 운전했다. 보트는 항해 도중 4번이나 뒤집힐 뻔한 위험에 처했다가 가까스로 그리스 해안경비대에 발견돼 40여명의 승객이 목숨을 건졌다. 그런데 같은 ‘반값 할인’ 조건으로 1시간 뒤 출발한 또 다른 보트는 결국 뒤집혀 13명이 숨졌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최근 그리스 쪽 해안가에는 바다에 빠져죽은 아이와 가족을 잊지 못해 넋이 나간 채 떠돌아다니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유럽 난민 사태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줄어들 것으로 기대됐던 난민은 계속 늘고 있고, 변덕이 심해진 겨울바다 날씨로 인해 난민들의 항해는 점점 더 위험해지고 있다. ‘출구’ 없는 난민 사태에 유럽 각국은 추가적인 국경 폐쇄 움직임을 보이면서 최악의 수순으로 빠져드는 형국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2일(현지시간) 10월 한 달 동안 바다를 건너 그리스와 이탈리아에 도착한 난민이 21만8000명이라고 발표했다. 월 기준 역대 최대이자 지난해 온 전체 난민 숫자와 같은 규모다. 올해 전체적으로는 74만명이 바다를 건너왔지만 갈수록 더 많아질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장은 영국 일간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시리아 등에서 극단적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지 않는 한 난민은 계속 늘 것”이라고 지적했다.
바다를 건너는 난민이 많아진 만큼 희생자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 한 주 동안에만 70여명이 숨졌다. 올 들어 현재까지 익사한 난민은 3440명에 달한다.
추위는 또 다른 시련이다. 가디언은 “현재 난민 루트 대부분이 영상 5도 전후로 추워졌고 일부 지역은 영하로 내려갔다”면서 “크리스마스가 오면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루트가 속출해 임산부와 노인, 아이들이 고통스러워 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독일도 이제는 넘쳐나는 난민에 버거워하고 있다. 때문에 국경 근처에 일종의 ‘환승구역’을 만들어 이곳에서 다른 유럽국들에 난민을 분산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상황이 이렇자 유럽권에서는 국경 폐쇄 목소리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고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WP는 “난민이 너무 많아 머잖아 어느 한 나라가 국경을 폐쇄하고 이를 신호로 다른 모든 나라도 동시에 국경을 폐쇄하는 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
혹독한 겨울 추위… ‘死線의 난민’ 덮친다
입력 2015-11-03 2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