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념의 덫에서 역사 교과서를 해방시키자

입력 2015-11-03 21:09
역사 교과서 국정화가 마침내 확정 고시됐다.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3일 “더 이상 역사 교과서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막고 역사교육을 정상화해 국민통합을 이루기 위해 국가의 책임으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발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황교안 국무총리도 ‘역사교육 정상화를 위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발행제도를 개선해 ‘올바른 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 교과서 발행체제가 2007년 6월 검인정으로 전환된 뒤 8년5개월 만에 국정화로 바뀌게 된 것이다. 지난달 12일 행정예고 후 꼭 22일 만이다.

당초 정부는 행정예고 기간 동안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뒤 국정화를 고시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20일간 대화는 온데간데없고 ‘너 죽고 나 죽자’ 식의 사생결단만이 온 나라를 뒤덮었다. 자극적인 막말과 치졸한 이념 대결만 있을 뿐이었다. 대한민국이 역사전쟁이라는 거대한 블랙홀로 빠져든 양상이었다. 광복 후 극심했던 이념 대립 시대를 다시 보는 듯했다. 이처럼 20일 동안 제대로 된 토론회 한번 없었다는 사실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정부가 올 초부터 진행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공청회 한번 개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터라 더욱 그렇다. 의견을 모아가는 절차가 극히 부족했다는 점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교육부는 국사편찬위원회(국편)를 책임 기관으로 지정해 집필진 구성에 곧 착수하고, 이달 말부터 1년간 집필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집필진은 위촉과 공개모집을 병행해 20∼40명 규모가 될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요 대학 역사 관련 교수와 역사학회가 잇달아 교과서 제작 과정에 불참을 선언해 집필진 구성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고품격 역사 교과서를 향한 첫 단추는 교육부와 국편이 보수, 진보, 중도 등 다양한 시각을 갖춘 유능한 학자들로 집필진을 꾸릴 수 있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집필진 구성에 총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다음은 집필 과정이다. 국편은 필진들이 서로 소통하며 입체적으로 역사를 조명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과서 내용을 검토하는 중립적 기구나 절차 등 보완장치를 둬 편향성을 막아야 하며, 논란이 되는 사안마다 공청회를 열어 객관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검토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집필기간 확보가 필수적이다. 내년 11월 말까지 집필을 끝내고 2017년 3월부터 교과서를 보급하겠다는 일정에 지나치게 연연해서는 안 될 것이다. 모든 과정이 국민의 검증을 받고 투명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없다. 그래야만 정권이 바뀌어도 끄떡없는 고품질·고품격 교과서가 탄생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올바른 역사 교과서’며 이념의 덫에서 역사 교과서를 해방시키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