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중국 경제] 中 경제의 축소판 다롄을 통해 들여다보니… 창싱다오 공업구 가동률 10% 이하
입력 2015-11-03 21:56
중국 랴오둥반도 남단에 자리 잡은 다롄시는 동북지역의 경제 중심지다. 동북지역 물류의 70% 이상이 이곳을 통해 움직인다. 과거 다롄은 조선업과 석유화학 등 중화학공업을 기반으로 한 도시였다. 중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부동산 붐을 통해 소비도 급격히 늘었다. 하지만 전통 제조업의 몰락과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고 있다. 중국 전체 경제의 축소판이다. 하지만 첨단 제조업 유치와 전자상거래 활성화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모색하고 있는 모습 역시 중국 경제와 닮아 있다.
◇전통 제조업의 몰락, 공장가동률 10% 안 되는 공단도 많아=다롄에서 차로 1시간20분 거리의 창싱다오 임항공업구는 한국의 거제도를 잡기 위해 국제적인 조선 벨트로 육성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야심 찬 계획 하에 조성된 개발단지다. 2009년 국가급으로 승급된 ‘랴오닝연해경제벨트발전계획’의 핵심단지였다. 지난달 22일 찾은 창싱다오 곳곳은 가동을 멈추고 새 주인을 찾고 있는 STX다롄 말고도 폐허로 버려지거나 놀고 있는 공장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공터도 즐비했다. 현지 관계자는 “보통 개발구에는 오르면 팔려고 땅만 사놓고 투기하는 사람도 많다”고 전했다. 조선업 특화 지역이다 보니 조선기자재 업체만 모아 선박공업원을 조성해 놨지만 황량하기 그지없었다. 임항공업구에서 조선기자재 공장을 운영하는 한 사장은 “창싱다오의 공장가동률은 10%도 안 될 것”이라면서 “그나마 주문이 있어서가 아니라 기계를 돌리지 않으면 가동 중단된 것으로 여긴 금융권의 대출 회수 압박을 우려하는 곳이 많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중국에서 가장 큰 베어링공단이 위치해 있는 다롄의 현급시인 와팡뎬도 현재 공장가동률이 10∼20%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롄항 노른자위 땅에 위치한 다롄조선은 겉으로 보기에는 ‘형편’을 가늠하기 힘들다. 인근 한 업체 관계자는 “다롄조선도 거의 주문이 없는 것으로 안다”면서 “중국 해운사들이 주는 물량으로 근근이 먹고살고 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다롄조선에 부품을 납품하는 한 한국 기업체 법인장은 “보통 다롄조선에 납품을 하면 3∼4개월짜리 어음이었는데 요즘 6∼7개월로 늘었다”면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롄뿐만 아니라 한때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던 광둥성 둥관이나 장쑤성 쑤저우 등에서도 외국 기업들의 잇따른 철수와 중국 기업들의 도산으로 제조업 공동화 현상이 빚어진 지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과잉투자의 상징 부동산, 흉물이 된 빈 아파트 단지들=다롄개발구에는 건설이 중단되거나 완공된 뒤에도 흉물로 남아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 즐비하다. 과거 봉제·섬유나 전기전자 분야의 위탁 가공업이 발달했던 다롄 지역에는 2007년 무렵부터 한국이나 일본계 기업들이 철수하거나 도산하기 시작했다. 시 정부는 재정수입이 급감하자 이를 충당하기 위해 부동산 개발에 적극 나섰다. 외국 기업들이 철수한 공장 부지들은 주택단지로 용도 변경돼 신도시가 됐다. 하지만 급격한 공급 초과와 부동산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비어있는 건물이 1000동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랴오닝성 단둥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지난달 북·중 무역박람회 취재차 찾은 단둥의 신도시 격인 ‘신구’는 거대한 유령 도시를 방불케 했다. 박람회장이나 새로 개장한 호시무역구 주변 건물은 대부분 비어 있는 상태였다. 단둥시는 2008년 행정과 경제, 문화의 중심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빌딩과 아파트를 건설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로 제대로 입주가 이뤄진 건물을 찾기 힘들다. 한 조선족 사업가는 “투자 차원에서 3년 전 아파트 한 채를 사 놓기는 했지만 가격만 떨어지고 이자만 물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 첨단기업 등 외국 기업 유치에 발 벗고 나서=다롄 지역에서 가장 의욕적으로 진행 중인 프로젝트는 국가급 개발구인 ‘진푸(金普)신구’다. 지난해 7월 국무원의 비준을 받았으며 총 2299㎢의 면적으로 서울의 4배 가까이 된다. 2020년까지 동북아 물류의 중심지로 다롄을 키우겠다는 목표로 전 세계 기업들의 투자 유치를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다롄시는 지난 5월 진푸신구에 ‘국제전자상거래 산업원’을 설립했다. 중국 경기 둔화로 전반적인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있지만 전자상거래가 매년 급증세를 보이자 전자상거래 특구를 만든 것이다. 입주한 전자상거래 관련 기업에 2년간 사무 공간을 무상 지원하는 등 각종 혜택으로 투자 기업들을 유치하고 있다. 지난달 말 현재 150여개 관련 기업의 입주가 확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롄개발구 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모여 있는 단지에는 세계적 반도체 기업인 인텔이 자리 잡고 있다. 2010년부터 조립공장을 운영해 오던 인텔은 앞으로 3∼5년간 최소 35억 달러(약 3조9600억원)를 투자해 다롄공장을 비휘발성 메모리칩 생산 공장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최근 밝혔다. 비휘발성 메모리칩은 전원이 끊겨도 데이터가 저장되는 칩으로 최신 기술이 적용된 최첨단 메모리칩이다.
전통 제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고 경기 둔화가 지속되고 있지만 중국에 대한 외국인직접투자(FDI)는 꾸준히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다. 3일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올 들어 9월까지 중국 FDI 유치규모는 5847억4000만 위안(약 104조370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9%나 증가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보다 서비스업에 대한 투자가 많다. 특히 첨단기술이 적용된 선진 서비스업과 첨단 제조업에 대한 FDI가 급증했다. 올 들어 9월까지 서비스 분야에 투자된 FDI는 전년 동기 대비 19.2% 증가한 반면 제조업 FDI는 0.7% 늘어나는 데 그쳤다. 특히 선진 서비스업에 투자된 FDI는 전년 동기 대비 무려 57.6%나 뛰었고, 첨단 제조업 FDI 규모는 10.4% 증가했다.
다롄·단둥=글·사진 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