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확정고시] 총리의 ‘프레젠테이션 담화’ 왜?

입력 2015-11-03 22:26 수정 2015-11-03 22:49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앞줄 오른쪽 네 번째)가 3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같은 당 소속 의원들과 함께 '역사왜곡 교과서 반대'라고 쓰인 '한 글자' 피켓을 든 채 농성을 벌이고 있다. 이동희 기자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지원사격에 나선 것은 반드시 이를 관철시키겠다는 정부의 승부수로 해석된다. 반대여론이 끓어오르자 교육부 대신 국정 2인자로 책임자의 ‘격’을 높여 배수의 진을 친 것이다. 국정화에 소극적이라는 평가를 받던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청와대의 불만이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황 총리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교육부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발표에 앞서 파워포인트(PPT)를 이용해 ‘프레젠테이션’식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이를 위해 연단 옆에는 60인치짜리 대형 TV 스크린이 설치됐다. 황 총리는 국무총리실이 미리 준비해온 PPT 화면에 맞춰 담화를 이어갔다. 잠시 후 ‘6·25전쟁은 북한만의 잘못이 아니라던데?’라고 쓰인 화면에 이어 ‘38도선을 경계로 잦은 충돌이 일어나다’라고 기술된 두산 동아의 역사 교과서 내용이 소개됐다.

황 총리는 “어떠셨습니까?”라고 물은 뒤 “너무나도 분명한 6.25전쟁의 책임마저 북한 잘못이 아닐 수도 있다는 그릇된 생각을 갖게 할 우려가 있다. 38도선의 잦은 충돌이 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것처럼 교묘하게 기술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대한민국과 북한의 정부수립 비교 및 천안함 폭침 사건 기술 등 다양한 사례를 PPT로 소개하며 국정화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총리실 직원은 전날 총리의 발언과 모니터 화면을 맞추기 위해 리허설까지 진행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다.

필사적인 정부의 총력전은 ‘밀리면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2004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이 금성출판사 교과서를 친북·반미 교과서로 지적한 이래 10년 이상 논란이 지속됐다. 그 사이 일본의 역사 교과서 문제 등과 맞물리며 반대여론도 강력하게 응축돼 있는 상태다. 주요 대학 역사학 전공 교수들이 일제히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등 학계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정부는 이런 상황을 뒤집기 위해서는 황 부총리만으로는 부족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황 총리가 대국민 담화를 통해 기존 교과서의 ‘불편한’ 항목을 일일이 짚어주는 ‘생방송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도 이런 이유다.

황 총리는 나아가 교과서 집필진의 독점 구도와 교사용 지도서·문제집까지 전방위적으로 문제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가 스스로 현행 검정 제도의 실패를 고백하면서까지 국정화를 결정한 데 대한 반감도 커 논란이 확대될 전망이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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