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등대의 섬, 한국의 나폴리 경남 통영 섬 기행

입력 2015-11-04 18:34
경남 통영의 미륵산 정상에 서면 통영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150여개의 섬이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멀리 거제도 가라산 위로 일출이 시작되자 겹겹이 이어진 섬들이 윤곽을 드러내고, 바다는 생선 비늘처럼 반짝이고 있다.
한려해상 조망 케이블카(왼쪽 사진), 물이 빠진 열목개 몽돌길(오른쪽 사진).
미륵산 정상에서 본 통영항 야경(위 사진), 매물도의 오륙도.
소매물도 망태봉에서 본 등대섬 모습. 썰물로 물이 빠지면서 섬 사이에 길이 드러나자 탐방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경남 통영의 앞바다는 보석 같은 섬들을 품고 있다. 한려수도에 올망졸망 뿌려진 무수한 섬은 그 자체로 풍경이 되고 그림이 된다. 한국인이 꼭 가보고 싶은 섬 1위로 꼽은 소매물도는 통영 미륵산 정상(461m)에서 보면 한산도 너머 끝자리에 엎드려 있다. 통영에서 직선거리로 26㎞다. 매물도·소매물도·등대섬 삼형제 중 둘째다. 주민들은 웃매미섬이라고 부른다.

보석 같은 섬을 품은 바다

그 섬에 가고 싶어 거제시 저구항을 찾았다. 항구를 떠난 배는 파도를 헤치며 육지로부터 멀어져간다. 햇빛을 받은 바다는 물고기 비늘처럼 반짝인다. 바다 위에 점점이 떠 있는 다도해 섬들이 하나 둘씩 뒤로 물러난다. 섬 사이를 미끄러져 간 배는 30여분 만에 매물도에 닿았다. 이 곳 2개 마을을 거친 뒤 소매물도 선착장에 들어간다.

소매물도에는 선착장∼폐교∼망태봉∼열목개∼등대섬에 이르는 3.1㎞짜리 등대길이 있다. 선착장에서 등대섬으로 가는 길은 마을 한가운데로 난 가파른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길을 오르다 뒤돌아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쪽빛 바다’란 표현이 그대로 어울린다. 그 짙푸른 바다 위에 ‘오륙도’가 떠있다.

10여분 오르면 소매물도 분교가 나온다. 1996년에 폐교돼 나무와 수풀로 우거져서 정문과 건물 일부만 보인다. 여기서 5분여 더 걸으면 망태봉 이정표가 세워진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등대섬(1.4㎞), 오른쪽은 정상인 망태봉(0.1㎞) 가는 길이다. 어느 쪽을 택해도 등대섬과 연결되지만 먼저 망태봉 쪽으로 가는 게 좋다.

망태봉 정상(157m)엔 예전 세관의 감시초소로 쓰였던 하얀 건물이 있다. 주변 풍경과 어울리지 않는 생경한 모습이지만 건물 위에서 바라보는 풍광만큼은 일품이다. 하얀 등대, 푸른 하늘 그리고 코발트빛 바다와 그 뒤에 점점이 서 있는 갯바위들은 그대로 카메라에 담기며 작품이 된다. 오랜 시간 거센 바닷바람과 파도에 맞서온 장대한 기암절벽은 절로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소매물도와 등대섬 사이는 자라목 같은 잘록한 길로 이어진다. 길이 70m의 열목개 몽돌길이다. 바닷물이 빠지면 ‘모세의 기적’처럼 물길이 열렸다가 바닷물이 부풀어 오르면 모습을 감춰 신비함까지 더해준다. 그 길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르다.

길이 열린 틈을 타서 등대섬으로 오른다. 열목개에서 등대까지는 경사가 조금 급하긴 해도 10∼15분 정도면 오를 수 있다. 천천히 풍경을 감상하며 오르면 이보다 훌륭한 길이 없다. 등대가 서 있는 정상에서 수직단애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찔하다. 주위엔 병풍바위 촛대바위 등이 호위하듯 우뚝 서 있다. 등대섬에서 소매물도 오른쪽으로 보면 영락없이 공룡을 빼닮은 공룡바위가 눈에 담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등대섬을 나선다. 물이 차기 전에 서둘러 되돌아 나와야 한다. 선착장에서 망태봉을 거쳐 등대섬까지 가는 데는 빠른 걸음으로 1시간이 안 걸린다. 쉬엄쉬엄 풍광을 즐기며 걷는다 해도 3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소매물도 선착장에서 곧바로 오르지 않고 왼쪽으로 난 길로 들면 소매물도의 또 다른 풍경을 만난다. 이 길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폭풍의 언덕’이다. 망망한 바다와 그 위를 떠다니는 듯한 한려수도의 섬들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남매바위도 있다. 골짜기 중간에 있는 집채만 한 바위와 그 아래로 30m 떨어진 해안가에 있는 또 다른 커다란 바위다. 위에 있는 크고 거뭇한 것이 숫바위고 아래에 있는 약간 작은 희멀쑥한 바위가 암바위이다. 이 바위는 옛날부터 특별하고 애잔한 전설을 품고 있다. 어릴 때 헤어졌다가 성장해서 만난 쌍둥이 남매가 오누이 사이인 줄 모르고 사랑에 빠져 부부의 인연을 맺으려는 순간 하늘에서 번개가 치며 벼락이 떨어져 두 남녀가 바위로 변했다는 얘기다. 남매바위에서 30분가량 오르면 망태봉 이정표 삼거리와 만난다.

그 바다를 굽어보는 산

통영에서 가장 큰 섬이 미륵도다. 이 미륵도의 한가운데에 미륵산이 솟아 있다. 산 정상에 올라 바라보는 통영의 섬과 바다는 황홀경이다.

미륵산은 그다지 높지 않다. 용화사에서 미륵치를 지나는 1.8㎞의 가파른 산길을 50분가량 걸으면 닿는다. 용화사에서 띠밭등→샘터→미륵산→미륵치→용화사로 돌아오는 4㎞ 정도의 코스도 있다. 정상에서 남쪽으로 보면 ‘다도해’란 이름이 실감난다. 섬 너머 섬, 또 섬이다.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저 멀리 한산도와 우도, 비진도, 욕지도, 연화도, 매물도, 소매물도, 사량도 등 15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다정하다. 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 지리산 천왕봉까지 보일 정도로 탁월한 전망을 자랑한다. 반대편 북쪽으로는 수려한 경관을 자랑하며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항이 자리하고 있다. 아침 햇살에 잠에서 깨어난 통영이 활기를 찾는다. 만선의 꿈을 품고 떠나는 어선을 따라 물새들도 힘차게 날아오른다.

이런 풍경을 크게 힘들이지 않고 만날 수도 있다. 국내 최장(1975m)의 한려수도 조망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미륵산 8부 능선에 있는 상부정류장까지 올라 약 400m 길이의 데크를 걸으면 정상이다. 마름모 형태의 데크를 따라 한 바퀴 돌며 한려해상국립공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조선시대 봉수대 터가 있다. 연간 120만 명이 찾는 인기 코스로 자리매김했다.

통영=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