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빽하게 들어선 전시 부스들 사이를 오가는 관람객들. 테이블 위에 예쁘게 펼쳐놓은 수공품들. 전시장 한쪽 무대에서는 이런저런 공연과 행사가 펼쳐지고…. 얼마 전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풍경이다. 지난여름에는 ‘핸드메이드코리아페어’가 열렸고, 오는 12월에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공예트렌드페어’가 개최를 기다리고 있다. 이처럼 올해 코엑스에서 열리는 대규모 공예 페어만 해도 세 개나 된다. 가히 공예 페어 붐이라 할 만하다. 여기에는 물론 전 지구적인 친환경 트렌드와 생활의 고품격화가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겠지만, 나는 이를 한국 공예의 구조 변화라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 공예에서 시장의 귀환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는 새삼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게 해주는 교환의 장이다. 공예 영역에서 시장이란 생산자인 공예가(장인)의 생존을 보장해주고 공예가 대중의 생활 속으로 들어오도록 만드는 경로인 것이다. 그러므로 공예에서도 시장의 기능은 핵심적이다. 그런데 지난 100여년간 한국 공예에는 제대로 된 시장이 없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그동안 공예의 생산과 소비가 없었거나 아니면 그것이 연결·순환되지 않았다는 얘기이다. 한국의 대학에 적지 않은 공예학과가 있고 또 그런 만큼 해마다 다수의 공예가들이 배출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생산과 생존을 보장해주는 공예 시장이 없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물론 오늘날 가격이나 기능 면에서 보더라도 손으로 만든 공예품만으로는 현대적인 생활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예품은 대량 생산품과는 다른 매력으로 여전히 삶의 멋과 맛을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나아가 공예는 현대적인 디자인에도 독특한 감각을 부여하여 ‘공예적인 디자인’을 창조해 내도록 한다. 오늘날 일본, 이탈리아, 스칸디나비아의 디자인이 높이 평가되는 데는 거기에 그들 전통공예의 고유한 감각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전통공예와 현대디자인의 연결고리로서도 현대공예는 중요하다.
문제는 한국의 경우 이러한 연결고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물론 우리의 특수한 근대화로 인한 것이다. 19세기 말 전통사회가 붕괴되면서 이 땅의 공예 시장도 소멸하였다. 그것을 대신한 것은 주로 일본에서 들어온 대량 생산품이었다. 공산품이 공예품을 대신한 것이다. 자생적인 시장을 상실한 한국 공예는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의 조선 취미에 부응하는 관광기념품을 만들어내는 쪽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조선미술전람회 공예부처럼 식민지배 권력이 선사한(?) 공모전 제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생활문화로서의 공예가 설 자리는 사라졌다. 전통공예가 현대디자인으로 발전할 계기도 자연히 상실했다.
이러한 구조는 광복 이후에도 지양되기는커녕 더욱 강화·재생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오랫동안 한국 공예는 식민지 문화 제도를 계승한 공모전(예컨대 국전 공예부와 대한민국 공예대전)과 대학이라는 폐쇄회로 속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생활 속의 공예를 방기하는 결과를 빚게 되었음은 앞서 말한 대로이다. 아무튼 지금 한국 공예에 필요한 것은 시장이다. 공모전과 대학이라는 폐쇄회로를 벗어나 다양한 공예품이 생산되고 유통되는 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내가 근래의 공예 페어 붐에 주목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광복 70년을 지나며 식민지 구조가 비록 한 부분에서나마 조금씩 극복되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 그지없다. 100여년 만에 공예 시장이 돌아오고 있다.
최범 디자인평론가
[청사초롱-최범] 공예, 시장의 귀환
입력 2015-11-03 18: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