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이준협] ‘일자리 사다리’가 없다

입력 2015-11-03 17:42

정부의 청년고용정책이 무려 298개다. 그런데도 여전히 청년 체감실업률이 22%에 달하고, 유능한 고학력 청년이 일하지 못하면서 발생하는 경제적 손실도 어림잡아 매년 20조원을 넘어선다. 이토록 많은 대책을 쏟아냈는데도 효과가 미미하다면, 청년실업에 대한 진단이 잘못돼 해법이 삼천포로 빠진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일이다.

“청년은 정규직 같은 좋은 일자리를 원하는데, 기업은 청년을 정규직으로 뽑으려 하지 않는다.” 청년 노동시장의 단적인 모습이다. 왜 그럴까? 청년이 좋은 일자리만을 고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일자리 상승 사다리가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개개인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비정규직 같은 나쁜 일자리에서 정규직 같은 좋은 일자리로 옮겨갈 가능성이 낮다는 응답률이 82.2%나 됐다. 어떻게든 첫 직장만큼은 정규직 대기업을 고집할 수밖에 없고, 여기서 과도한 고학력화와 스펙 쌓기 경쟁이 파생되는 것이다.

기업은 기업 나름대로 청년을 정규직으로 뽑지 않는 이유가 있다. 기업은 세계화와 경쟁 심화에 맞서 유연성을 높이고 노동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노력한다. 핵심 업무만을 정규직으로 뽑고 비핵심 업무는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으로 충당하는 것도 현업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유경험자를 선호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의 채용행태를 바꿀 만큼 충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지 않는 한 청년에게 돌아갈 정규직 일자리는 소수에 불과하단 얘기다.

정부는 청년고용이 부진한 이유로 급속한 고학력화, 산업수요와 괴리된 교육, 일자리 창출력 저하, 경력자 선호 경향, 청년 창업 감소 등을 제시하고, 그 해법으로 청년층의 조기취업과 장기근속 유도에 주력할 계획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미스매치 해소는 경기활성화나 5대 유망서비스 산업 육성 등으로 보완하겠다는 방침도 세웠다.

정부의 진단과 해법은 핵심을 비켜가는 듯하다. 먼저 일자리 사다리 개념이 누락되어 있다. 정부가 조기취업을 강조하면서 청년인턴제를 추진하지만, 정규직으로의 전환율이 낮아 외면받고 있다. 일자리 사다리를 놓아야 한다. 청년인턴의 정규직 전환 장치를 대폭 강화하고, 고용서비스 인프라는 단순한 일자리정보 제공에서 벗어나 더 좋은 일자리로의 이동을 지원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성과관리 방식과 예산도 이에 맞춰 재구성돼야 한다.

청년 몫의 좋은 일자리 창출을 보완과제쯤으로 취급하는 것도 지적돼야 한다. 당장 추진할 대책을 마련하려는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는 공공기관과 공기업이 정원의 3%를 청년 미취업자로 채용토록 규정하고 있는데, 한시적으로 대기업으로까지 확장하는 것을 고려해봄 직하다. 근로시간 단축을 청년고용과 연계한다거나, 이공계 청년을 채용해 연구개발 능력을 강화하는 강소기업에 대폭 지원하는 방법도 있다. 소방, 경찰, 포괄간호서비스, 보육·유치원교사 등의 공공 분야에서 청년을 정규직으로 대폭 확충하는 것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다.

청년고용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 있으며 지난 9월 타결된 노사정 대타협 합의문에는 구체적인 방안이 꽤 많이 포함돼 있다. 노사정은 대기업과 공기업의 청년 신규채용 확대,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의 연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 축소,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우수중소기업 발굴에 합의했으며,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청년고용촉진협의체를 구성키로 했다.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준협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동향분석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