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아들 돌보던 아버지, 며느리에 “치료비 내라”

입력 2015-11-02 21:55 수정 2015-11-02 21:58
A씨(70)의 아들은 2008년 초 두통을 호소하다 7월 결핵성 뇌염으로 쓰러졌다. 두 달 뒤 퇴원했지만 심각한 뇌손상 후유증을 앓았다. 날짜, 요일은 물론 5분 전 일도 기억하지 못했다. 결국 2013년 8월 치매 진단을 받았다.

2002년 결혼한 아들은 2007년 7월부터 별거 상태였다. A씨는 대학교수직에서 퇴직한 연금 생활자였다. 아들을 위해 줄기세포 치료비 등 4000만원이 넘는 치료비를 부담했다. A씨는 2014년 며느리를 상대로 “치료비를 부담하라”는 소송을 냈다. A씨의 며느리는 대기업에 다니며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급여로 모두 6억원을 받았다.

민법상 부부에게는 상대방의 생활을 본인과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하는 1차 부양의무가 있다. 부모는 자녀가 스스로 생활할 수 없을 때에 한해 2차 의무를 갖는다. 1차 의무자가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2차 의무자가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 다만 과거의 부양료를 받아내려면 당시 당사자가 부양료를 청구하지 못했던 특별한 사정이 인정돼야 한다.

1심은 며느리가 A씨에게 돈을 줄 필요는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A씨 아들이 부양료 청구를 못할 만큼 특별히 건강이 나쁘지는 않았다고 본 것이다. 아들이 2011년 8월 며느리에게 불만을 표시하는 문자를 보낸 점 등이 근거가 됐다. 며느리는 1심 직후 이혼소송을 내 지난 9월 이혼이 확정됐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항소9부(부장판사 오성우)는 원심을 깨고 “며느리가 A씨에게 30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일 밝혔다. 재판부는 “A씨 아들은 발병 이후 현재까지 부양청구를 할 만한 정신적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다. 또 “이혼 확정 전까지 법률상 부부로 지낸 점을 고려할 때 부양의무가 있다”고 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