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역사교과서 국정화 확정고시 왜 앞당겼나… 악화되는 여론에 ‘국정’ 기정사실화 쐐기

입력 2015-11-02 22:37 수정 2015-11-02 23:11
정부·여당이 국정화 확정고시를 앞당긴 것은 시간을 끌어봐야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에서다. 행정예고(지난달 12일) 후 20여일 전개된 여론전에서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하루빨리 기정사실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소모적인 논쟁은 접고 좋은 교과서를 만들도록 지켜봐야 한다’ 등의 논리로 반대 측을 압박하겠다는 의도로 분석된다.

◇판판이 깨진 여론전=정부·여당은 국정화 당위성을 설파하는 방식으로 여론전을 폈다. ‘학생들이 주체사상을 배운다’거나 ‘6·25전쟁 책임이 남한에도 있는 듯 기술한다’는 식의 논리를 앞세워 검정 교과서의 문제점을 부각하려 했다.

색깔론까지 동원한 이 방법은 역풍을 맞았다. “교과서 검정 책임이 있는 교육부가 누워서 침을 뱉었다”거나 “사실이라면 이런 교과서를 검정해준 교육부 장관이 문제”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기존 검정 교과서들이 유관순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홍보 동영상, 검정 교과서를 읽은 학생들이 대한민국을 부끄럽게 여긴다는 홍보 웹툰 등은 이런 비판의 타깃이 됐다.

특히 교육부가 비공개로 서울 동숭동에 마련한 국정화 태스크포스(TF)의 존재가 구설에 오르고, TF 직원들이 야당 국회의원들을 막기 위해 경찰에 신고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여론전에서 열세에 놓였다. 이 와중에 국정화 사령탑인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에 대한 경질설까지 흘러나와 상황이 더 나빠졌다.

이런 결과는 여론조사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행정예고 전에는 찬반이 팽팽하거나 찬성 의견이 약간 앞서는 결과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여당이 대대적인 여론전을 편 뒤 오히려 반대 여론이 많아졌다. 한국갤럽이 지난달 30일 발표한 여론조사(27∼29일)를 보면 반대 49%, 찬성 36%로 적지 않은 격차를 나타냈다.

◇‘역사 전쟁’ 정점으로=3일 확정고시가 단행되면 행정예고 기간에 교육부가 제대로 여론을 수렴했는지부터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행정예고 기간 20일을 둔 이유는 정부가 정책을 펼 때 국민 의견을 수렴해 반영토록 하자는 취지다. 2일 야당 의원들은 시민 40여만명의 반대서명과 의견서 1만8000여부를 교육부에 넘겼다. 확정고시가 당초 예고보다 이틀 앞당겨져 3일 오전에 발표되므로 이날 제출된 의견이 제대로 검토될 가능성은 없다. 행정예고가 요식 절차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집필진 구성과 명단 공개 여부는 최대 난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와 국사편찬위원회는 확정고시 직후부터 집필진과 편찬심의위를 꾸려 본격적인 집필 작업에 착수하게 된다. 교육부가 발표할 국정 교과서 개발 기본계획에 집필진 구성과 공개 방식 등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의 실패한 여론전은 가뜩이나 심각한 ‘집필진 구인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필자난이 심화되면서 집필에 참여하는 학자나 교사 명단을 부분 공개 내지는 비공개로 전환할 뜻을 밝히자 ‘밀실 교과서’라는 비난을 받으며 여론이 더욱 악화되는 악순환 양상을 보였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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