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이들이 있어 더 빛난다… ‘개성 톡톡’ 깨소금 연기 조연 ‘4인방’

입력 2015-11-03 18:45 수정 2015-11-04 00:20

길태미, 모스트 편집장, 진언이 누나, 아치아라 파출소 한경사…. 요즘 방송가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드라마의 등장인물들이다. 각각 박혁권, 황석정, 백지원, 김민재라는 배우의 이름보다 캐릭터가 먼저 떠오른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캐릭터 뒤로 완벽하게 자신을 감추고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배우들을 사람들은 ‘신 스틸러’(Scene Stealer·주연 이상으로 주목받는 조연)라고 부르고 있다.

◇길태미로 불리는 배우 박혁권=박혁권(44)이 ‘육룡이 나르샤’(SBS)에서 연기하는 길태미는 고려 말 백성을 착취하는 3인방 중 한 명이다. 오만하고 인정사정없는 악역인데, 인기는 주인공 못잖다. ‘육룡이 나르샤’하면 바로 길태미가 연상될 정도다.

길태미는 캐릭터 자체가 강렬하다. 검사(劍士)라고 하면 떠오르는 진중하고 날선 이미지와는 동떨어진 인물이다. 짙은 화장을 하고 화려한 장신구를 걸쳤다. 말투는 경박하고 몸짓은 나긋나긋하다. 어딘가 어리숙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소 과장된 듯한 느낌의 인물이지만 그의 연기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1993년 산울림 소극장에서 연극으로 시작한 박혁권은 영화, 뮤지컬, 드라마에서 활약해 왔다. 안판석 사단으로 불리고 영화감독 윤성호와도 인연이 깊다.

◇‘모스트스러운’ 황석정=‘그녀는 예뻤다’(MBC)에서 김라라 편집장의 첫 등장은 황당했다. 패션쇼 런웨이 밖에서는 쓸 수 없을 것 같은 화려한 모자와 옷차림, 과장된 손짓과 걸음걸이로 이상한 사람이라는 기운을 온몸으로 뿜어냈다. 오페라를 연기하는 듯한 말투와 연극을 하는 듯한 눈빛은 시선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극 초반 오버스럽다는 비판도 있었으나 이내 잠잠해졌다. 황석정(43)의 연기력 덕분이다. 오히려 김라라의 ‘모스트스러워’라는 대사는 최고 유행어가 됐다. 오버로 똘똘 뭉친 캐릭터를 ‘그래, 저런 사람도 세상에 있을 것 같아’라고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황석정은 김라라 편집장과는 전혀 딴판인 고깃집 여주인으로도 등장했다. 극과 극의 1인 2역 연기로 보는 재미를 더했다.

그는 이름 없는 배우로 시작했다. 드라마와 영화에서 ‘슈퍼 여주인’ ‘호프집 여주인’ ‘빚쟁이 여자’ 같은 역을 맡았었다. 연극 무대에서 실력을 쌓았고 지난해 ‘미생’으로 시청자들에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서울대 국악과 출신이라는 이력과 ‘라디오 스타’ ‘나 혼자 산다’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독특한 매력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사이다같은 촌철살인, 진언이 누나 백지원=이런 안하무인이 없다. 재벌 2세로 제약회사 부사장으로 사원들을 무릎 꿇리고, 손들고 벌을 서게 하는 등 저질스러운 갑질을 해댄다. 아버지 회사를 차지하기 위해 갖은 술수도 쓴다. 일반적으로 분류하자면 악역이다.

하지만 진언이 누나는 ‘애인있어요’(SBS)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다. 웃기려고 하지 않는데 웃기고, 촌철살인의 대사는 시청자들의 속을 후련하게 한다. 불륜녀 박한별(강설리 역)에게 이렇게 쏘아붙이면 사이다 한 잔 마신 기분이다. “욕심 부리지 말고 알콩달콩 살아, 그냥. 뭘 다 가지려고 그래. 하긴. 아직 뾰족하게 딱히 가진 게 없다, 그치? 돈을 번 것도 아니고, 결혼을 한 것도 아니고. 나이만 먹었네?”

어딘가 코믹한 표정으로 사자성어를 적절하게 섞어가며 감칠맛 나게 대사를 하는 이 배우는 아직 시청자들에게 낯설다. 진언이 누나는 알아도 배우 이름은 모르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백지원(42)은 연극배우 출신으로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풍문으로 들었소’ ‘떴다 패밀리’ ‘밀회’ 등에 조연으로 나왔다.

◇한경사님 원래 경찰하시던 분 맞는 것 같은데…김민재=어디선 가 본 듯한 얼굴이다. 평범한 인상에 도무지 연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진짜 경찰이 파출소에서 일하는 듯한 모습으로 전화를 받고, 서류를 정리하고, 민원인을 대한다. ‘마을-아치아라의 비밀’(SBS)에서 아치아라 파출소 한경사를 보면 진짜 경찰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정의감 넘치는 모습도, 거들먹거리는 모습도, 강자 앞에서 약한 모습도 특별히 눈에 띄지 않는다. 그저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면서 날카롭게 증거를 찾아낸다. 경찰서장이 쩔쩔매는 도의원 앞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말하는 강단도 있다.

한경사는 마치 전직이 경찰이었을 것만 같은 김민재(36)가 연기한다. 그는 영화 ‘베테랑’에서 황정민과 맞서는 비리 경찰로 나와 묵직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