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에 휩쓸려간 터키 총선… 공포가 승리했다

입력 2015-11-02 22:13
터키 집권 정의개발당(AKP)이 1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자 수도 앙카라에서 여성 지지자들이 터키 국기와 AKP 깃발을 흔들며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터키 이스탄불에서 지지자들이 에르도안 대통령초상화를 들고 환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쿠르드족 중심 도시인 터키 동남부 디야르바키르에서 선거 결과에 항의하는 쿠르드족 청년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AFP연합뉴스
터키 총선에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61) 대통령이 이끄는 정의개발당(AKP)이 단독 내각 수립에 성공했다. 터키 국영 아나돌루통신은 1일(현지시간) 치러진 총선에서 AKP가 49.48%를 득표해 의회 전체 550석 중 317석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어 공화인민당(CHP) 25.31%, 민족주의행동당(MHP) 11.90%, 인민민주당(HDP) 10.75% 등의 순으로 집계됐다.

AKP 의석은 단독 내각 수립에 필요한 276석을 41석 뛰어넘은 수치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개헌 행보에 힘이 실림과 동시에 쿠르드족 반군과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터키의 공격도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승부수’ 성공한 에르도안=AKP는 지난 6월 총선에서 13년 만에 처음으로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그러나 당시 에르도안 대통령은 야당에 내각 구성 권한을 위임하지 않음으로써 고의적으로 야당과의 연정을 피했다. 이를 통해 조기총선을 실시, 단독 내각 구성을 시도했는데 위험을 무릅쓴 승부수가 이번에 통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금껏 추진해오던 개헌 논의에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2003년 이래 11년간 총리를 지내다 지난해 8월 대선에서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이후 강력한 대통령제가 필요하다며 개헌을 주장해 왔다. AKP가 확보한 의석에서 13석만 더 확보하면 개헌 국민투표가 가능하다. 59석을 더 얻어내면 투표 없이도 개헌할 수 있다.

◇쿠르드족의 반발=AKP의 승리에는 최근 터키를 뒤흔든 테러 위협이 크게 작용했다. 불안감이 조성되면서 안정적인 정국을 바라는 표심이 작동했다. 지난 7월부터 재개된 쿠르드노동자당(PKK)과의 분쟁을 비롯해 지난 10월 128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앙카라 연쇄 폭탄 테러 등의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집회를 주최했던 친쿠르드족 성향 인민민주당(HDP)은 이번에 지난 총선 대비 100만표 가까운 표를 상실, 6월 총선 때보다 21석 줄었다. 이 때문에 현지에서는 AKP가 최근 폭력사태를 ‘기획’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정국 안정을 바라는 표심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소요가 확산될 수도 있다. 이날 AKP의 승리가 확실시되자 터키 동남부 쿠르드족 거주지역 중심도시 디야르바키르에서는 쿠르드족 청년들이 ‘복수’를 외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경찰과 충돌했다. 이들의 반발이 확산될 경우 정치적 불안정이 오히려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고민=인접국 시리아 내 쿠르드족 반군 세력을 지원하면서 대IS전선을 형성해온 미군에도 AKP의 압승은 난감한 결과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쿠르드족 반군에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며 무력행사를 암시한 뒤 실제로 며칠 뒤 시리아 내 쿠르드 반군인 인민수비대(YPG)를 공격했다. 향후 터키가 이들에 대한 공격을 더욱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럴 경우 IS 척결을 위한 미군과 YPG의 연합 작전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