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의 틈새, 원장 말이 法… “공휴일 쉬면 연차 깎여”어린이집 교사들의 비애

입력 2015-11-02 21:25 수정 2015-11-03 00:01

“며칠이에요?” 서울의 한 구립 어린이집 보육교사 박시원(가명·33·여)씨는 다른 어린이집 교사들을 만날 때 인사말처럼 이렇게 묻는다.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연차휴가 15일 중 ‘실제로’ 며칠을 쉬었느냐는 뜻이다.

박씨는 지난해 연차 15일을 모두 사용했지만 그중 8일은 개천절 한글날 같은 공휴일에 쉰 것이었다. 공휴일을 제외하면 사실상 연차는 7일밖에 사용하지 못했다. 이마저도 박씨가 건의해 원장과 조율한 결과였다. 어떻게 된 일일까.

근로기준법에 따라 연차를 당연히 15일로 알았던 박씨는 어린이집 원장으로부터 황당한 설명을 들었다. 원장은 개천절 한글날 등 빨간 날에 쉬는 것이 다 연차휴가에 포함된다고 했다. 당황한 박씨는 자신의 근로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박씨의 근로계약서에 휴일은 ‘일요일, 근로자의 날, 그리고 기타 갑이 지정하는 날’뿐이었다. 박씨의 근로계약서에 따르면 원장이 허락하지 않는 한 공휴일은 박씨에게 쉬는 날이 아닌 셈이다.

근로기준법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1주일에 평균 1회 이상 유급휴일을 줘야 한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공휴일에 관한 규정은 따로 없다. 즉 일요일만 휴일로 인정되고 그 외에 쉬는 날은 사용자와 근로자 간 근로계약에 따라 정해진다.

흔히 빨간 날로 알고 있는 공휴일은 대통령령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을 따른다. 관공서의 공휴일이 자신이 근무하는 곳에서도 휴일에 포함되는지는 근로계약서가 정하는 것이다. 근로계약서에 ‘관공서 공휴일’이 휴일로 지정돼 있지 않다면 빨간 날은 쉬는 날이 아닌 것이다.

서울시는 보육교사들의 과도한 업무를 줄이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펴고 있다. 보육의 질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지난 7월에는 ‘현장업무 줄이기 4대 대책’을 발표하면서 “보육교사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휴일에 근무하는 교사에 대한 대체·유급휴일 보장을 근로계약서에 명문화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밝혔다. 또 “보건복지부에 공휴일 근무 시 유급·대체휴일을 사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다”고 했다. 그러나 서울시 관계자는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린이집의 자율적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며 한계를 인정했다.

서울시는 보육교사들의 연차휴가로 인한 업무 공백을 보완하기 위해 ‘대체교사 지원사업’도 시행하고 있다. 시행 첫 해인 2009년 4680명이던 대체교사는 올해 2만2776명까지 확대됐다. 하지만 어린이집마다 휴일 연차 적용이 제각각이다 보니 보육교사들 사이에서는 ‘원장의 말이 곧 법’이라는 말까지 나돈다.

2013년 이런 문제를 지적했던 새정치민주연합 이목희 의원 측도 “복지부에 시정 요구를 했는데 후속 조치가 없었다”며 “복지부에서 적절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복지부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휴일에 관해서는 근로기준법에 따라 사용자와 근로자가 근로계약을 맺는 것”이라며 “별도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보육교사 처우 개선에 관한 여러 정책은 추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육교사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육아정책연구소 김길숙 박사는 “5인 미만 시설 등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아 더 열악한 곳도 많다”고 말했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