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원회가 2일 공개한 ‘기업과 인권에 관한 국가기본계획(NAP)’ 권고안에는 근로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가 담겼다. 노동조건이 불공정하고 직장 내 차별이 심각하며 자유롭게 노조를 결성할 수 없고 모욕적인 대우가 빈발한다는 응답이었다.
대부분 노동법이 보장하는 권리지만 현실에선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권고안은 이런 ‘직장 인권’의 가치를 공식화해 누구나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기업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그러나 지나친 규제라는 재계 반발도 만만치 않아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권고안에 따르면 중소기업의 경우 최저임금 미지급, 직장 내 차별, 노동권·산업안전기준 위반 등 불법 경영을 막기 위해 정부가 지원 또는 압박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공기업은 인권경영의 성과가 기업 평가에 적용된다. 대기업은 노조설립 여부를 의무적으로 공시하는 한편 매년 정부의 인권 점검을 받아야 한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존중이 법적 개념으로 정립된 건 아니라 사기업에 직접적인 인권경영을 요구하지는 않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인권위는 정부에도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중 한국이 가입하지 않은 ‘강제노동 철폐’와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협약 등의 비준을 권고하기로 했다. 또 자회사나 하청기업에 의한 인권 침해에 대해 모회사나 원청회사에 법적 책임을 묻는 등의 사법적 구제뿐 아니라 사회적 분쟁해결기구를 통해 비사법적 구제 방안도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한 외국인도 국내에서 민·형사상으로 구제받을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재계는 기업의 고유한 영역을 침해하는 처사라며 반발했다. 기업은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률에 따라 근로자의 근로조건을 보장하고 쾌적하게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등의 책임을 질 뿐 일반적인 인권을 보장하는 기관이 아니라는 인식에서다. 경총 관계자는 “인권위의 권고안은 그동안 기업들이 인권을 존중하지 않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켜 반기업 정서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관계자도 “최저 근로조건 보장 등은 이미 관련법이 제정돼 있는데 이중규제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번 권고안은 유엔의 권고에 따라 만들어졌다. 2011년 ‘기업과 인권 이행 지침’을 발표한 유엔은 지난해 구체적인 실천 방안까지 마련했다. 저개발국에서 자본을 앞세워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횡포를 막자는 취지다. 이미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등이 이를 받아들여 ‘기업과 인권 NAP’를 추진 중이다.
2007년부터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을 제정해온 정부는 현재 2기(2012∼2016년)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러나 ‘기업과 인권’의 관계를 명확히 규정한 건 이번 권고안이 처음이다. 2011년 정부가 2기 NAP 사업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기업과 인권’ 분야가 초안에 포함됐지만 기업 활동이 위축된다는 재계의 반발로 최종안에서는 삭제됐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인권위 ‘인권경영 권고안’ 살펴보니…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노동법이 가장 큰 문제
입력 2015-11-02 22:41 수정 2015-11-02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