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인극 ‘사중주’서 파멸로 치닫는 남녀관계 연기 윤정섭·김소희

입력 2015-11-02 20:00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간판배우 윤정섭(왼쪽)과 김소희가 하이너 뮐러의 대표작인 2인극 ‘사중주’ 공연을 앞두고 2일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동독 출신의 하이너 뮐러(1929∼1995)는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 이후 독일어권에서 가장 의미 있는 극작가로 평가받는다. 지난달 로버트 윌슨 연출의 ‘셰익스피어 소네트’로 첫 내한공연을 펼친 세계적 명문극단 베를린 앙상블을 오랫동안 이끌기도 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지만 국내에선 유독 공연이 잘 되지 않았던 2인극 ‘사중주’가 6∼29일 서울 대학로 게릴라극장에서 채윤일 연출로 무대에 오른다. 극단 연희단거리패의 간판배우 김소희(45)와 윤정섭(33)이 출연한다.

‘사중주’는 프랑스의 유명 소설 ‘위험한 관계’(1782년)를 토대로 만들었다. 얽히고설킨 남녀관계 속에 18세기 프랑스 귀족 사교계에서 드러나는 비도덕성과 불합리한 이성을 그린 원작은 할리우드에서 ‘위험한 관계’ ‘발몽’, 한국에선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등 영화로 여러 차례 제작된 바 있다. 사랑과 성을 하나의 게임으로 바라보는 남녀 메르테이유와 발몽이 극중에서 역할을 다양하게 바꿔가며 놀이를 펼치는 ‘사중주’는 사랑과 성, 성과 권력, 역사와 개인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메르테이유 역의 김소희는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인 극작가 겸 연출가 이윤택의 페르소나로 불린다.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배우 중 한 명인 그는 2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뮐러의 ‘사중주’는 작품의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이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만만치 않았다”면서도 “40대 중반의 여배우가 이처럼 육탄돌격하듯 연기할 수 있는 작품을 맡게 돼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테랑 김소희조차 혀를 내두른 ‘사중주’는 원작의 무대를 프랑스 혁명전 살롱과 제3차 세계대전 후의 벙커로 옮겨놓는가 하면 두 주인공이 욕망의 희생물인 다른 두 여성을 연기하게 함으로써 결국 4명이 나오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유럽에서도 많은 연출가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을 선보여 왔다.

발몽 역의 윤정섭은 2008년 연희단거리패 대표작 ‘햄릿’에서 4대 햄릿으로 발탁된 이후 국립극단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그는 앞서 2011년 채윤일 연출로 극단 동료 배보람과 ‘사중주’에 출연했었다. 그는 “처음 이 작품을 했을 때 너무 어려워서 힘들었다. 그래서 채 선생님께서도 설명적인 부분을 많이 넣는 연출을 했었는데, 이번에는 군더더기를 아예 빼버리고 작품 본질에 충실하도록 했다”며 “배우로서는 새로운 과제를 받은 듯한 느낌”이라고 밝혔다.

두 배우는 원래 사제간이다. 김소희가 용인대에서 연기 강의를 할 때 윤정섭을 처음 만났다. 윤정섭이 연희단거리패에 들어온 이후 2011년 영국 연출가 알렉산더 젤딘의 ‘맥베스’에서 맥베스와 맥베스 부인으로 호흡을 맞추는 등 여러 작품을 함께했다.

김소희는 “정섭씨는 발성을 포함해 배우로서 좋은 조건을 타고 났다. 다만 내면의 표현력을 드러내기 위해 더욱 정교화하는 과정을 밟아야 한다”며 “‘사중주’ 같은 작품은 어렵지만 배우를 성장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윤정섭은 “절망과 무기력의 시대에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를 파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작품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이라면서 “관객들 반응이 극단적으로 나뉠 것 같지만 불필요한 친절함을 걷어낸 뒤의 진한 연극성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했다.

글·사진=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