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성경’ 꾸며보세요… 성경 리폼의 세계

입력 2015-11-03 21:12
제이의책상에서 만든 버턴 성경, 파스카에서 리폼한 성경, 김형주 파스카 대표가 최근 서울 은평구 증산로 작업실에서 리폼 전후의 성경을 양손에 들고 있다. 제이의책상에서 만든 물고기 두루마리 성경. 빨간망또에서 리폼한 분홍 꽃성경, 알록달록 꽃성경, 커플성경(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전호광 인턴기자, 각 성경리폼 사이트.

‘나의 사랑하는 책 비록 해어졌으나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앉아서∼.’ 성경을 주제로 한 찬송가 199장의 도입부다. 이 해어진 성경을 리폼(Reform, 낡은 물건을 새롭게 고침)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신앙의 흔적을 보관하고 싶어서다. 특색 있는 표지로 ‘나만의 말씀’을 간직하길 원하는 마음도 있다. 가죽, 헝겊, 합성피혁 등 다양한 소재로 성경 리폼을 하는 전문가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성경을 매일 읽고 묵상하는 A(47)씨는 표지가 해어진 성경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다. A씨는 3일 “성경을 산 지 두 해 정도밖에 안 지났는데 표지 껍질이 다 일어나 지저분하다. 줄을 긋고 읽은 흔적을 보존하고 싶어서 성경리폼하는 업체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나온 성경 책 표지가 과거에 비해 더 잘 해어지는 이유가 있다고 한다.

1970년대까지 국내 성경 출판사들은 주로 소가죽(牛皮)을 표지로 사용했다. 그러다 80년대 돼지가죽(豚皮)을 썼다. 90년대엔 원가가 더낮은 소가죽과 돼지가죽의 속가죽을 사용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합성피혁인 인조가죽이 일반화됐다. 인조가죽은 대개 부직포에 가죽과 같은 질감으로 코팅을 한 것이다. 색상은 화려하지만 1∼2년 사용하면 표피가 일어나 부스러지게 된다.

리폼을 고민하는 A씨의 표지도 인조가죽이다. 코팅한 부분이 벗겨져 부직포의 하얀 표면이 군데군데 드러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성경책 내지는 고가이다. 표지에 인조가죽을 사용하는 것은 성경책의 단가를 낮게 유지하기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실제 성경책 내지는 대부분 최고급 박엽지를 사용한다. 이 박엽지의 수명은 100여년이다.

성경을 오래 소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처음부터 가죽 표지로 된 것을 사거나 A씨처럼 다른 소재로 리폼하는 방법이 있다. 최근 서울 은평구 증산로에 있는 전문업체 파스카(pascha)를 찾아 리폼 과정을 살펴봤다. 김형주(56·은평중앙교회) 파스카 대표는 73년 업계에 들어와 82년부터 30년 가까이 제책사 비비(BIVI)를 통해 대한성서공회, 생명의말씀사, 아가페 등에 성경 표지를 납품해왔다. 그가 보유한 실용신안특허와 의장등록만 50여 가지다. 성경 출판업계 ‘명장’이라 불릴 만 하다. 김 대표의 70여㎡ 크기 작업실에는 형형색색의 성경 표지가 진열돼 있었다. “책이 도착하면 내지와 표지를 분리한 뒤 내지에 붙은 풀, 새양사, 가늠줄을 다 뜯어냅니다. 이 새양사가 ‘심장’이죠. 책을 잡아주는 새양사가 책 수명을 결정합니다.” 그는 내지 한쪽 면에 댄 천을 가리켰다.

“일부에선 이 새양사를 성긴 망사로 하죠. 그러면 책에 힘이 없어 잘 뜯어집니다. 저는 새양사를 나일론으로 사용합니다. 가위로 자르지 않으면 안 뜯어지죠. 성경은 ‘생명의 책’이지 않습니까? 평생 볼 수 있도록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내지를 바닥에 놓인 기계 안에 밀어 넣었다. “압축기입니다.” 내지를 망치로 ‘탕’ ‘탕’ 내려쳤다. “모양을 잡아서 여기에 서 너 시간 넣어둡니다.” 내지를 압축하는 동안 표지를 만든다. 주문한 소재에 따라 마름질을 한다. “같은 소가죽이라도 배 부위는 주름이 크고, 등 쪽은 주름이 잘아요.” 김 대표가 내민 소가죽은 부드러웠다. 압축된 내지와 모양 낸 표지를 붙이면 새 성경책이 탄생한다. 그는 현재 낮에는 대한성서공회 자회사인 바이블코리아 특수제본실장으로, 밤에는 파스카 대표로 일한다.

‘제이의책상’은 지난해 8월 제주도로 이주한 김정미(40·제주성안교회)씨의 성경리폼 작업실이다. 제이의책상은 세련된 디자인이 특징이다. “잡지사에서 일하다 서울 생활이 팍팍해 남편, 딸과 제주도로 이사 왔어요. 공방에서 북바인딩 강의를 하고 성경 리폼을 해요.” 밝은 목소리의 김씨가 전화에서 소개한 내용이다.

‘빨간망또’는 의류회사 디자이너로 일하는 송현주(39·예수제자교회)씨가 운영하는 작업실이다. 알록달록한 천을 이용해 성경을 리폼한다. “2011년 마음이 힘든 친구를 위해 성경리폼을 처음 해봤어요. 그렇게 지인들의 성경을 리폼해주다보니 의외로 리폼 원하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일주일에 2∼3권씩 리폼을 하고 있어요.” 송씨의 얘기다.

송씨는 기억에 남는 리폼 사례를 소개했다. “대학생 손자가 할머니의 오래된 성경을 리폼해달라고 맡긴 적이 있어요. 그 마음이 얼마나 예쁘던지요? (웃음)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성경 리폼을 부탁한 적도 있어요. 그 고부의 모습이 참 좋았어요. 소중한 성경책을 리폼해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게 얼마나 큰 기쁨인지 몰라요.” 송씨는 토요일 리폼 강좌도 진행한다.

리폼을 하기엔 성경이 너무 낡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박종순 충신교회 원로목사는 “낡았더라도 후일 자녀에게 물려준다면 그 자체가 ‘신앙의 유산’이 될 수 있지 않습니까? 가능하다면 성경을 소장해 물려주길 권합니다”라고 한다. 언젠가 지금 보는 ‘나의 가장 사랑하는 책’을 가장 사랑하는 이에게 건네면 좋겠다. 새 옷을 입혀서.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