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나는 중국 주재 한국대사관에 “식량난으로 탈북한 형제들을 보호하고 있다. 한국으로 가게 해 달라”고 보호요청을 했다. 하지만 대사관은 “외교적 부담이 크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당시 황장엽씨가 중국에서 한국으로 망명하면서 국제적인 관심을 받은 지 3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라 탈북자들의 남한 망명이 한국 정부에게는 굉장한 외교적 부담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런 상황을 전해들은 탈북 형제들은 “지위 높은 탈북자만 살려주고 우리처럼 이름도 직위도 없는 탈북자는 모르는 척하는 건가”라며 섭섭해 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정부의 입장을 이해해야만 했다. 그리고 중국이 아닌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해 다시 국경을 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몸이 약한 나를 제외하고 다른 동료들이 경계가 취약한 국경을 찾아 탐사를 할 동안 나와 탈북 형제들은 집에서 기다려야 했다. 외부 활동이 철저하게 제한된 채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나는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며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하나씩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마음의 문을 조금씩 열어 갔다. 그러던 중 아이들 앞에서 어른들의 체면을 세워주고 싶어서 이런 상황이 어른들의 탓이 아니라 지도자의 탓이라고 이야기를 꺼냈다.
“김정일이 지도자라면 백성들은 먹였어야죠. 배급으로 생활하게 해놓고 배급을 안하면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요. 지도자 한 사람의 잘못된 판단이 백성들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는 거라고요.”
탈북자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 그리곤 버럭 화를 냈다.
“아니 어떻게 우리 장군님을 김정일이라고 그냥 부를 수 있습니까?”
나는 깜짝 놀라 “아니 그럼 식량난이 인민들 탓이에요? 인민들이 뭘 잘못했어요?”라고 쏘아붙였다. 자신들은 짐승 몰골을 하고 목숨까지 걸어가며 조국 땅을 등진 채 숨어 살면서 지도자라는 사람의 호칭 때문에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이 황당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면서 시위 한 번 안하는지 속 시원하게 답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질문을 하기도 전에 그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옆에 있던 한 탈북 여성이 내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제 중국 친척이 그러더라고요.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굶어 죽어 가면서 자기는 자살하는 것이 아니라며 유서를 쓰고 죽느냐고. 북한은 자살할 자유도 없는 나라라고. 그 얘길 듣는데 기분이 나쁘더라고요. 정말 우리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고, 사회주의 지상낙원을 거부하고 목숨을 끊은 자살자의 가족들이 무시당하고 성공할 수도 없기 때문에 가족을 생각해서 유서를 쓰는 것인데 그게 잘못된 것인지 정말 고민이 되더라고요. 그러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배웠구나, 다르게 배웠으니 모두가 이상하게 생각하겠다고 이해했어요. 저 분들도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기분이 나쁠 거예요. 그러다 밤잠 못자고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 깨닫게 될 겁니다.”
그들은 북한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과 인민과 수령은 일체다’ ‘북한은 사회주의 지상낙원’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지도자가 욕을 먹으면 자신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또 북한체제 안에서 당을 거부하거나 반대하면 가족까지 혹독하게 처벌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제야 의문점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좁디좁은 내 생각의 테두리 안에 그들을 가둔 채 차갑게 쏘아붙인 것이 한없이 미안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역경의 열매] 조명숙 <7> ‘남한 망명’ 막힌 탈북자들 도와 제3국 탈출 시도
입력 2015-11-02 17: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