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국정 분야를 제쳐두고 인사 하나만 놓고 보면 박근혜 대통령은 대구·경북(TK) 대통령이다. 국민 전체의 대통령이 아니라 그들만의 대통령이라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최근 차기 검찰총장 후보로 김수남 대검 차장을 내정하자 비영남권 출신의 한 법조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김 내정자를 비롯해 임환수 국세청장,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이 TK 출신이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경남 합천 출신이지만 김 내정자의 대구 청구고 4년 후배다. 특정 고교 출신이 검찰과 경찰의 수장을 동시에 맡은 전례가 없다. 경남 출신인 황찬현 감사원장까지 포함하면 5대 사정기관장이 모두 영남이다. 여기에 이완수 감사원 사무총장도 TK다. 청와대 사정라인인 우병우 민정수석, 이명재 민정특보, 권정훈 민정비서관도 TK다. 차기 검찰총장 체제가 들어서면 곧 바뀔 가능성이 있지만 박성재 서울중앙지검장도 TK다. 서울중앙지검은 정치적으로 예민한 특수사건과 공안사건 수사를 많이 다루는데, 박근혜정부 들어 서울중앙지검장은 세 차례 연속 TK 인사가 차지했다. 이로써 이명재 민정특보-우병우 민정수석-김수남 검찰총장으로 이어지는 TK 사정라인이 형성된 것이다.
지역 편중 인사가 하필이면 가장 공정해야 할 사정기관에 집중됐다. 예를 들어 청와대 관저에서 일하는 비서들을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웠다면 별 문제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사정기관은 얘기가 다르다. 검찰은 특히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이 생명이고, 정치권력의 도구가 되는 것을 가장 수치스러워한다. 5대 사정기관장이 모두 영남 출신으로 채워진 것은 전두환·노태우 정부 때도 없었다. 구색용으로라도 다른 지역 인사들을 안배했다. 국민통합을 위해서다.
“국민통합은 말로만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면 모든 인사에서 대탕평을 확실하게 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지만 지금 박 대통령은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국민통합은 공약도 아닌 국정 교과서에 비해 정책 우선순위에서 한참 뒤로 밀려났다. 오죽하면 영남 편중 인사에 대해 조용하던 보수 언론들마저 보다 못해 이번 인사를 비판하고 나섰을까.
최근 군 장성 인사에서도 육군 사단장(소장)으로 진출한 10명 중 6명이 영남 출신이다. 이 중 5명은 TK 출신이다. 해군과 해병대 인사에서는 소장·중장 진급자 7명 중 4명이 영남 출신이다. 공군도 중장 진급자 2명 중 1명이, 소장 진급자 2명 중 1명이 영남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도 영남 편중 인사에 대해 불만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일치단결이 생명인 군에서도 분열이 일어날까 걱정된다.
지역보다 능력과 도덕성을 보고 뽑았다는 청와대의 설명은 다른 지역 사람들은 능력과 도덕성이 없다는 말로 오해될 소지도 있어 인사에서 소외받는 지역의 상실감과 반감이 크다. 특정 지역이나 정파에 치우치지 않고 고루 등용하는 인사를 해야 국민통합을 이룰 수 있다. 지역 편중과 차별로 정권의 결속력은 강화할 수 있을지 몰라도 분열과 갈등으로 인한 국가 전체의 부작용이 크다.
대선 과정에서 편이 갈렸더라도 일단 대통령이 된 후에는 국민 모두의 지지와 존경을 받는 100% 대통령이 되기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자기를 지지하는 사람들만 바라보며 국정을 운영할 생각인 듯 그런 노력을 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지하는 세력들의 강한 결집력과 각종 선거에서의 불패 경험이 이런 생각을 심어준 듯하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충성심이 인사의 중요한 기준이 되면 많은 것을 잃을 우려가 있다.
신종수 편집국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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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돋을새김-신종수] 그들만의 대통령이 안 되려면
입력 2015-11-02 1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