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고단하신가요? 힐링 한 모금 어때요…‘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 커피향 가득한 슬로 무비

입력 2015-11-03 18:35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가 사무치게 그리울 때, 도시를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사색하고 싶을 때 이 영화를 본 후 커피 한 잔 마시는 건 어떨까. 대만·일본·한국 합작 영화 ‘세상의 끝에서 커피 한 잔’(사진)은 커피 향기 가득한 슬로 무비다. 살벌한 스릴러 영화로 도배된 늦가을 극장가에 ‘기다림 한 스푼, 힐링 한 모금’이라는 타이틀로 따뜻한 감성을 전하는 작품이다.

어린 시절 헤어진 아버지가 8년 전 실종됐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미사키. 인적 없는 해안가 땅 끝 마을에서 미사키는 아버지를 기다리며 ‘요다카 카페’를 연다. 이웃에 살고 있는 싱글맘 에리코는 두 아이를 홀로 키우면서 타지로 일을 나간다. 삶의 방식과 가치관이 전혀 다른 두 여인이 만나 부딪히고 의지하며 소중한 것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

씩씩한 모습의 이면에 뭔지 모를 슬픔을 머금고 있는 미사키 역은 ‘좋아해’로 국내 팬들에게도 낯익은 일본 여배우 나가사쿠 히로미가 맡았다. 강한 듯 약한 면모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에리코는 모델 출신 배우 사사키 노조미가 연기했다. 영화는 연기파 두 배우를 통해 가슴 아픈 이별과 기다림, 부모 자식 간의 애틋한 감정, 이웃 사이에 싹트는 진정한 우정 등을 얘기한다.

햇빛이 부드럽게 쏟아지고 붉은 노을이 한 폭의 그림 같은 영화 속 땅 끝 마을은 이사카와 현 노토반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했다. 대만의 치앙시우청 감독은 근처에서 실제로 로스팅 커피점을 운영하는 여주인의 삶이 잡지에 실린 것을 보고 모티브를 얻었다. “사람들은 왜 이 먼 곳까지 커피를 마시러 오는 걸까”라는 의문을 “소중한 사람을 기다림”으로 풀어냈다.

치앙시우청 감독은 ‘비정성시’ ‘홍등’ 등을 연출한 대만 거장 감독 허우 샤오시엔의 수제자다. 청출어람이라고 했던가. 제자는 스승의 ‘카페 뤼미에르’ ‘타이페이 카페’를 잇는 이번 작품으로 벤쿠버, 런던, 하와이, 홍콩, 부산 등 세계 유수의 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주연배우 나가사쿠 히로미는 제51회 타이베이금마장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아이를 좋아하는 미사키와 사람을 경계하는 에리코가 점차 마음을 열고 “어서 와!” “다녀왔어?”라고 얘기를 나누는 대목에서 잔잔한 미소를 짓게 된다. 미사키가 가슴 속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장면에서는 눈시울이 붉어진다. 커피의 깊은 맛과 부드러운 향기에 싸여 얼어있던 마음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순간, 소소하지만 아주 멋진 기적이 시작된다. 5일 개봉. 12세 관람가. 119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