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지된 거장’의 열정 싣고 오라이∼ 이란의 사회상 유머와 재치로 고발한 영화 ‘택시’

입력 2015-11-03 18:34
5일 개봉되는 ‘택시’는 올해 제65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을 수상한 영화다. 이란의 진보적인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55·사진)가 자신을 옥죄는 갖가지 굴레에도 불구하고 영화 찍기에 대한 애정과 고집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연부터 각본, 연출, 촬영, 조명, 편집까지 혼자 맡았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비하인드 스토리가 화제를 모으고 있다.

◇20년간의 영화연출 금지령을 깨다=파나히 감독은 2009년 이란의 당시 대통령이었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의 재선 부정선거 규탄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란혁명재판부에서 징역 6년형과 함께 향후 20년간 영화연출 및 시나리오 집필, 해외출국 금지를 판결 받았다. ‘하얀 풍선’(1999) ‘써클’(2002) 등으로 유명한 그는 영화를 찍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어떻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택시 운전기사가 돼 승객들의 이야기를 담는다면 괜찮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승객들이 촬영을 꺼려하고 영화가 제작되면 출연한 승객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포기하는 대신 지인들을 설득시켜 다큐멘터리 형태로 찍었다. 계기판 옆 티슈 통에 초소형 카메라를 설치하고 선루프를 조명 삼았다.

◇이란의 현실을 코믹하게 들려주다=15일 동안 노란색 택시 안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는 무겁지 않고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 타이어를 훔쳐간 절도범을 사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남자와 그런다고 해서 범죄가 줄어들지 않는다며 반박하는 여교사, 교통사고로 응급실에 실려 가면서도 휴대전화로 아내에게 재산 상속 유언을 남기려는 남편과 이를 챙기려는 아내의 모습이 웃음 나게 한다.

이란의 유명 인권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가 우연히 택시에 탑승했다. 소투데는 여자신분으로 배구경기를 보려고 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곤체 가바미에게 면회를 가는 길이었다. 파나히 감독으로부터 촬영 사실을 전해들은 소투데는 “하던 일 해요. 그게 더 중요하죠”라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는 갖고 있던 장미 다발 중 한 송이를 뽑아 카메라 앞에 놓았다.

◇몰래 작업한 편집본을 여러 곳에 숨겨놓다=각고의 노력 끝에 제작한 ‘택시’를 지켜내기 위해 철저히 숨겨야 했다. 영화를 제작한 것을 들키는 날에는 어렵게 촬영한 필름은 물론이고 편집본까지 송두리째 이란 정부에 압수되고 자신 또한 고초를 겪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15일간 촬영한 영상을 집에서 그날그날 혼자 숨어서 몰래 편집했다.

편집본의 안전을 위해 각 촬영이 끝나거나 편집이 끝날 때마다 여러 번에 걸쳐 백업을 해두었다. 최종 촬영을 진행한 15일째 되는 날이 촬영 종료일인 동시에 첫 편집본의 완성일이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최종 편집본을 여러 개로 복사해 도시 곳곳에 숨겨 놓았다. 감독은 그때서야 비로소 누구도 자신의 영화에 손 댈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의 영예를 안다=베를린영화제 프로그래머인 앙케 레베케가 직접 이란을 방문해 ‘택시’를 관람한 후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했다. 파나히 감독은 ‘택시’의 최종 완성본을 영화제 측에 건네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대상을 거머쥐었다.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한 그는 “나는 영화감독이다. 어떤 상황에 처하든 영화제작을 계속할 것”이라고 소감을 전했다.

‘블랙스완’ ‘노아’ 등을 연출한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베를린영화제 심사위원장)은 “파나히 감독은 예술혼을 잃지 않고 분노와 좌절감에 휩싸이지도 않은 채 영화에 보내는 러브레터를 만들어냈다. ‘택시’는 그의 예술, 공동체, 조국, 관객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다”고 호평했다. 르몽드 등 언론들도 “위트와 재미를 선사하는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전체관람가. 82분.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