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자 국민일보 지면에서 연세대 김상근 교수는 요즈음 국정화 이슈에 대해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찬성과 반대 의사를 만천하에 떨치는 성명서를 발표하기보다는 작금의 사태를 냉정하게 지켜보는 것이 역사적 사명이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필자를 포함해 국정화를 지지한 신학자의 이름을 실명으로 거론하면서 “후대의 냉철하신 역사가들이여, 부디 이들의 행동과 선택을 역사적으로 평가해주시오!”라고 국정화를 지지한 신학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냉정하게 지켜보자”면서 국정화를 지지한 교수만을 일방적으로 매도하고 있다. 그는 냉정하게 지켜보는 사람이 아니라 한편에 서 있는 것이다.
김 교수는 역사 논쟁을 ‘뜬금없는 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뜬금없는 일이 아니다. 이미 지난 10년간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에 대한 긴 논쟁을 벌여 왔고, 이번 국정 교과서 문제는 이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필자가 역사 교과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8년부터다. 당시 가장 많이 사용되던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기독교를 ‘지나치게 복음주의적이어서 제국주의와 일제 침략을 옹호하기도 하였다’고 기록했다. 큰 충격이었다. 한국 기독교는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일제와 싸우면서 오늘의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후 한국사 교과서를 검토하고 더욱 놀라게 됐다. 조선 후기에 들어온 천주교, 천도교, 심지어 정감록을 상세하게 다루면서 개항 이후의 기독교에 대해서는 겨우 몇 줄로 설명한 것이다. 한국교회사를 가르치는 교수로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기독교의 중요성을 가르쳐 왔는데 역사 교과서에 서술된 기독교의 모습은 너무 빈약했다. 여러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논리에 부닥쳐 번번이 실패했다.
아울러 최근 몇 년간 해방 후 한국사를 연구한 결과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대한민국 건국세력을 중심에 놓지 않고 오히려 반대 세력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현재 대부분의 교과서는 해방 이후 한국사를 여운형의 건국준비위원회로부터 시작한다. 여운형은 진보적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임시정부를 반대하며, 박헌영과 함께 인민공화국을 만든 사람이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돼 있으며,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밝히고 있다. 건국준비위원회가 해방 이후 한국사의 출발점이 될 수 있을까?
대한민국은 1948년 5월 10일 아시아에서 최초로 실시한 민주 선거에 의해 합법적으로 탄생한 국가이며, 유엔은 대한민국을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적인 정부로 인준했다. 그런데 역사 교과서는 이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오히려 제주 4·3사건, 여수·순천사건 등을 부각해 서술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잘못 태어난 나라라는 것이다.
역사 교육과정 논쟁이 벌어진 2011년, 당시 정부는 교육과정에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명시하고자 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반대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대부분의 한국사 학계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건 아닌가?
20세기 한국사에서 가장 잘한 일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근거해 민주주의, 경제성장,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는 것이다.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가 이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바로잡고자 필자는 한국사 교과서 논쟁에 참여하게 됐다.
박명수(서울신대 교수·신학과)
[기고-박명수] 한국사 교과서 이것이 문제다
입력 2015-11-02 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