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사 및 영토 갈등 문제로 3년6개월간 공전돼 왔던 한·중·일 3국 정상회의가 ‘역사를 직시하면서 미래를 지향한다는 정신’ 아래 완전 복원됐다. 과거사 문제 등 양자 갈등을 유발하는 민감한 이슈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경제·사회·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는 이뤄나가야 한다는 데 세 나라 정상이 합의한 것이다. 다만 과거사와 영토 문제 등 한·일, 중·일 양자 간 핵심현안에 대한 입장은 공동기자회견이나 공동선언문에 담기지 않았다. 첨예한 이슈는 비켜가면서 쉽게 풀 수 있는 사안에 대한 협력 강화를 재확인한 셈이다.
◇‘역사직시·미래지향’ 바탕을 둔 동북아 협력=박근혜 대통령과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서 역내 평화 안정을 위한 협력에 합의했다. 세 정상이 채택한 ‘동북아 평화협력을 위한 공동선언’은 전문(preamble)과 5개 항의 협력분야로 구성됐다. 한·중·일 정상은 이번 회의를 계기로 한·중·일 3국 협력의 ‘완전한 복원’을 이뤘다고 적시했다. 향후 3국 정상회의를 다시 정례화할 것이라는 원칙도 확인했다.
그러면서도 동북아 협력의 바탕은 ‘역사직시 및 미래지향’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한·일 간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 중·일 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영토 갈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3국이 경제 등 미래를 위한 협력 공간을 열어둬야 한다는 점에 더욱 무게를 뒀다. 실제로 세 정상은 정상회의 모두발언과 기자회견을 통해 3국 협력체제 복원에 적지 않은 의미를 부여했다.
공동선언문이나 기자회견에서 과거사·영토 문제가 직접적이고 구체적으로 명시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정상회의에선 남중국해 문제 등도 거론되지 않았다. 다만 박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으로, 리 총리는 “협력은 역사 등 민감한 문제를 처리하는 토대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라는 표현으로 한·일, 중·일 간 불편한 관계를 에둘러 표현했다.
◇협상 가속화, 3국 정부 협의체 신설=이번 정상회의를 계기로 3국 간에 실질분야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각종 협의체도 신설됐다. 세 정상은 공동선언을 통해 정치·안보는 물론 경제·교육·안전 등 다양한 분야에서 3국 협의체를 새로 만들기로 하고, 인적 교류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우선 3국은 동북아 및 국제사회 평화·안보를 위해 비확산 분야의 협력을 강화키로 하고 3국 간 (핵)비확산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다. 이와 관련, 한반도 및 역내 평화와 안정이 3국의 공동이익이라는 점도 재확인하고, 북핵 6자회담 조속 재개를 위한 공동노력도 명시했다.
또 교육 협력 확대를 위해 3국 교육장관회의를 신설하고, 3국 대학 간 교류 프로그램인 ‘캠퍼스 아시아’를 모범으로 삼아 학생 교류도 촉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재외국민 보호 협력을 위해 3국 외교당국 영사국장회의 개최를 모색하고, 범죄 대응을 위한 치안협의체 설립도 검토하기로 했다. 경제 분야에서는 한국의 창조경제, 중국의 창신경제, 일본의 혁신정책을 연계할 이른바 ‘창조경제 협의체’와 북극정책 공유를 위한 ‘고위급 북극협력대화’ 개설이 눈에 띈다.
세 정상은 또 오는 2020년까지 3국 간 인적 교류를 3000만명으로 늘리자고 합의하고 이를 위해 ‘동아시아 방문 캠페인’ 등 관광촉진 활동도 장려하기로 했다. 아울러 3국 협력 제도화를 뒷받침할 3국협력기금(TCF) 조성이 필요하다는 데도 의견을 같이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
[한·중·일 정상회의] 역사 직시하며 미래지향… ‘공생’ 시험대
입력 2015-11-01 21: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