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 이슈] ‘아랍 용광로’ 요르단 재부상… 평화의 불씨, 아직 살아있다

입력 2015-11-02 19:02 수정 2015-11-02 21:43


사해를 사이에 두고 이스라엘의 동쪽에 접경한 요르단은 국가 규모나 국제적 영향력과는 별개로 중동 분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팔레스타인과 종교·문화적으로 유사해 수백만이 넘게 발생한 팔레스타인 출신 난민 다수를 수용했을 뿐 아니라 이라크 시리아 등 주변국 난민들도 요르단에 흡수돼 왔다. ‘아랍권 용광로’와 같은 정서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끈질기게 반목, 수차례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지만 내부적으로 사회적 통합도 착실히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요르단은 수니파 국가이면서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함마드의 직계 혈통이 국왕을 세습하고 있다. 동시에 중동 내 대표적인 친미 국가이기도 하다. 요르단은 이스라엘과 수차례 전쟁을 겪는 과정에서 중동 갈등 해소의 전략축으로 선정돼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를 받으며 성장했다. 1946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당시 약 45만명에 불과했던 인구가 2013년 약 680만명으로 15배 이상 증가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이스라엘의 강경한 이민책과 ‘이슬람국가(IS)’의 위세 속에 인근 수니파 국가에서 발생하는 난민들이 중동 내 피난처를 찾을 때 요르단을 선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난민들이 요르단 사회에 성공적으로 안착했지만 정부 및 군대 요직 진출에는 제약이 따른다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미국에서 그랬듯 특히 팔레스타인 출신들이 재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요르단 경제의 실력자로 거듭났다. 요르단은 특히 이집트와 함께 팔레스타인인들이 육로로 이스라엘 내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끔 허용해준 나라이기도 하다. 다른 중동국들은 이를 불허해왔다. 과거 길고 긴 전쟁을 치른 구원(舊怨)은 남아 있지만 요르단은 ‘친미’와 ‘팔레스타인’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이스라엘과 정치·경제적 소통을 개선해가고 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간) 요르단 수도 암만을 방문해 압둘라 2세 국왕과 회동한 뒤 “이스라엘-요르단 양국이 (예루살렘의 성지인) 템플마운트 지역의 긴장 완화에 필요한 여러 조치들을 취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7일에는 양국 정부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지역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터넷으로 실시간 영상을 볼 수 있는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 방안에 합의하는 등 요르단이 중동 갈등 해소의 첨병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정건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