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팔 리스트’ 존재설(說)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사기범 조희팔이 정·관계 고위층에 금품·향응을 제공한 내용이 담겨 있다는 명단이다.
피해자 모임 ‘바른 가정경제 실천을 위한 시민연대’(바실련)는 이 리스트가 존재한다고 보고 있다. 오랜 기간 조희팔 주변을 추적해보니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것이다. 명단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주장하는 조희팔 일당 주변 인물도 등장했다.
여러 주장을 종합하면 ①조희팔의 내연녀 김모(42·여)씨 ②채권단 대표를 자처했던 곽모(47)씨 ③부산 지역 조직폭력배 조모(47)씨 등이 현재 조희팔 리스트를 갖고 있는 인물로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은 “확인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내연녀? 자금 담당? 조폭?=내연녀 김씨는 조희팔이 중국 밀항 때 지닌 ‘로비 수첩’의 근거 서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2008년 12월 밀항선에 오를 때 조희팔은 로비 대상자 명단을 적은 ‘손바닥만한 전화번호 수첩’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 수첩을 갖고 가면서 김씨에게 그 내용과 관련된 서류들을 불태우라고 지시했는데, 김씨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이를 태우지 않고 보관 중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김상전 바실련 대표는 “조희팔의 밀항을 주도한 홍모(55)씨가 김씨에게 ‘그 서류를 태우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당시 홍씨 부부와 친하게 지내 홍씨를 ‘형부’라고 불렀던 김씨가 조희팔의 지시를 홍씨에게 전하자 홍씨는 “이걸 갖고 있어야 네가 산다”고 했다는 것이다.
강태용(54) 호용(47) 형제의 친구로 조희팔의 검·경 로비에서 핵심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곽씨도 조희팔 리스트를 갖고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곽씨는 2009년 ‘전국조희팔피해자채권단’ 공동대표를 맡으며 채권단이 확보한 조희팔 재산 매각대금 일부를 빼돌려 징역 6년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대구교도소에서 곽씨와 함께 수감생활을 한 장모(24)씨는 “곽씨 측근이 곽씨에게 보고 형식으로 올린 문서를 입수했다”며 “A4용지 30장 분량에 수십명 로비 명단과 액수 등이 적혀 있다”고 주장했다. 바실련 관계자는 “교도소에서 곽씨가 이모(47)씨로부터 로비 업무와 관련된 보고를 받은 것은 맞다”고 했다.
조희팔이 부산에서 다단계 사기 행각을 벌일 때 그를 도왔다는 조폭 조모(47)씨도 리스트를 갖고 있는 것으로 지목된다. 바실련 측은 “조희팔은 사람을 잘 믿지 못했지만 성씨가 같은 조씨에게만은 양아들로 삼을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줬다”고 했다. 조씨의 폭력조직은 1990년대 부산에서 시작해 2000년대 거대 폭력조직으로 성장했지만 2009년 다른 조직과 세력 다툼을 벌이다 대거 검거된 뒤 현재는 와해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은 모락모락…검·경은 미지근=조희팔이 검·경 로비에 사용했다고 알려진 액수는 34억원이 넘는다. 조희팔은 측근을 통해 오모(54) 전 검찰수사관에게 15억8000여만원, 권모(51) 전 총경에게 9억여원, 김광준(54) 전 부장검사에게 2억7000여만원을 건네는 등 비호 대가로 마구 돈을 뿌렸다. 사기 피해자들은 범행 규모나 석연찮은 수사 정황으로 미뤄 검은돈이 정·관계까지 깊숙이 흘러들어 갔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조희팔 비호세력’을 규명하려면 ‘조희팔 리스트’ 확보가 급선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경찰과 검찰은 로비 리스트에 대해 확인된 게 없다는 입장이다. 대구지방경찰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대구지검 관계자도 “명단은 전혀 확인되지 않았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수사할 수는 없다”고 했다.
조희팔 사기 피해자 200여명은 1일 오후 부산 연제구의 바실련 부산지사에서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회견장에는 여러 맹인이 코끼리를 더듬는다는 뜻의 사자성어 ‘군맹무상(群盲撫象)’이란 글귀가 적혀 있었다. 김상전 대표는 “조희팔 사건은 대한민국의 부패 종합선물세트”라며 “정부의 수사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했다. 그는 이날 ‘조희팔이 중국 남쪽 국경지대에서 탈북 루트를 통해 동남아나 한국으로 밀입국하려 한다는 소문이 있다’는 태국 교민의 제보 전화 녹취록을 공개하기도 했다.
부산=김판·신훈 기자 pan@kmib.co.kr
조희팔 리스트, ‘3인방’은 알고 있다?… 피해자 모임 기자회견 “리스트 있다” 거듭 주장
입력 2015-11-01 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