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한국 수출 중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저유가가 최근 들어서는 수출 악화 등 경제 부진의 주 원인으로 둔갑했다. 과거와 달리 수요 부진에 따른 저유가 장기화가 수출금액 감소, 신흥국 수출 급락세를 가져와 대외경제여건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어서다. 게다가 최근 들어 산유국의 국내 자금 인출도 급증하고 있어 저유가가 실물뿐 아니라 금융시장 불안을 초래할 가능성마저 제기되고 있다.
◇저유가가 수출 급락세 야기=수출액이 6년 만에 최대 폭으로 떨어진 10월 수출입 동향을 보면 저유가 영향을 받은 석유제품(-44.9%)과 석유화학(-31.6%)의 감소세가 두드러졌다. 선박(-63.7%) 자동차(-1.3%) 철강(-29.6%) 등의 수출 감소도 모두 저유가에 따른 신흥시장의 수요 및 단가 하락이 주 요인이었다. 국제유가는 지난해 9월 배럴당 100달러(두바이유 기준) 아래로 떨어진 뒤 올 8월부터 40달러대로 추락했다.
과거와 달리 최근의 저유가가 우리 수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세계 수요부진 현상 때문이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교역증가율은 저유가가 심화됐던 1985년 2.8%에서 86년 4.3%로 크게 뛴 반면 2014∼2015년은 3.3%에서 3.2%로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
전 세계적인 구매력 악화는 수출 지표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2005∼2008년 월평균 13.8% 증가했지만 2010∼2014년 10.5%를 거쳐 올 1∼9월 6.6% 급감하는 등 하강 곡선을 그렸다.
최근의 유가 변동은 상당한 불확실성을 동반해 성장가능성이 높은 국가의 투자 등 내수 회복이 지연되고 있어 대(對)신흥국 수출에 장애가 되고 있다. 실제 자원 수출을 주로 하고 있는 신흥국과 중동산유국들이 저유가로 타격을 받자 우리나라의 이 지역 수출이 크게 줄고 있다. 2005∼2008년 17.8%의 증가율을 보였던 대신흥국 수출은 금융위기 직후인 2010∼2014년에도 두 자릿수 증가세(11.4%)를 보이다가 올해 -6.4%로 급락했다. 대중동 수출증가율의 경우 2005∼2008년 25.9%에서 올해 -9.0%로 급전직하했다.
한국은행 조사국 방홍기 과장은 “80년대 중반에는 견실한 세계경제 성장세에다 원유 공급 증대로 유가가 떨어지면서 우리 경제에 긍정적 영향이 나타났지만 최근에는 유가 하락이 수요 부진으로 나타나 긍정 효과가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유국 1년 새 국내에서 13조여원 자금 인출=1일 금융감독원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노르웨이 3대 산유국의 국내 주식 보유액은 지난해 7월 41조3410억원에서 지난 9월 31조2880억원으로 10조530억원 감소했다. 국내 채권시장에 투자하는 말레이시아, 노르웨이, 카자흐스탄 등 3대 산유국의 상장채권 보유액도 같은 기간 15조1940억원에서 11조8310억원으로 3조원 이상 줄었다. 금융권에서는 저유가 현상이 장기화하면서 산유국들이 실탄 확보를 위해 신흥국에 투자한 자금의 회수를 서두르는 것으로 보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책임연구원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신흥국에서 산유국 자금이 한꺼번에 빠진다면 G2리스크(미국 금리인상, 중국 경기불안)와 맞물려 금융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
저유가의 ‘부메랑’… 한국경제를 흔들다
입력 2015-11-01 2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