企銀, 창업·성장기업들 집중 지원… 産銀, 대기업 대신 중견기업 올인

입력 2015-11-01 21:33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정책금융기관에 정부가 칼을 댔다. 민영화 추진 과정에서 정체성이 모호해졌던 산업은행의 역할을 제대로 확립하고, 정책금융이 기업의 성장 초기단계부터 성장 과정에 맞는 지원을 할 수 있도록 기능을 조정한다.

금융위원회는 1일 기업·산업은행 정책금융 역할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민간은행과 역할을 차별화해 기은은 창업·성장기업, 산은은 대기업 대신 중견기업에 초점을 맞춰 지원하도록 역할을 분배했다. 또 조선, 해운, 건설 등 경기민감 산업보다는 주력산업으로 성장할 수 있는 미래 성장동력 산업의 발굴·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이번 개편안의 핵심은 산은 기능 재조정이다. 산은의 정체성이 흔들린 데는 조변석개(朝變夕改)식 정부 정책의 영향도 있다. 산은은 경제발전 과정에서 산업자금을 융통하는 정책금융기관으로 많은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명박정부 5년간 민영화 추진 후 박근혜정부 들어 민영화가 백지화되면서 산은의 위치가 국책은행과 민간은행 사이에서 애매해졌다.

정부는 정책금융 사이에 기능 중첩을 피하고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역할을 재편한다. 산은은 중견기업·예비중견기업 지원규모를 2018년 30조원까지 늘린다. 중견기업이 보조금 등을 이유로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피터팬 증후군’을 막기 위해서다. 기은은 창업·성장기업 지원에 역량을 집중해 지난해 9조1000억원 수준이었던 지원규모를 2018년 15조원으로 확대한다.

미래 성장동력 산업을 주력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지능형 로봇, 착용형 스마트기기, 스마트자동차 등 19개 분야를 선정해 자금을 지원한다. 사업 초기 자금난을 넘어서 성장궤도에 오를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그동안 편중됐던 경기 민간업종 대출은 재점검하고 한계기업에 대해선 옥석가리기에 나선다.

산은이 보유한 비금융회사는 내년부터 3년간 집중 매각한다. 대우조선해양을 오랫동안 보유하기만 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출자전환 기업 정상화, 투자기업 성장 등 정책목적 달성 기준에 따라 91개 기업이 대상에 올랐다. 여기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대우조선해양, 한국지엠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매각에 속도를 내기 위해 장부가액 이상이 아닌 ‘시장가치’ 매각을 원칙으로 한다. 시장가치가 장부가액에 미치지 못해도 적정손실을 반영하고 팔겠다는 뜻이다. 또 배임을 우려해 산은 임직원이 주저하지 않도록 금융위가 매각 실적을 평가할 때 3년간 집중매각 기업에 대해서는 고의·중과실이 없는 한 임직원에게 책임을 묻지 않을 방침이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