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육군 A사단 대대장 B중령은 익명의 제보를 받았다. 영외 독신자 숙소에서 간부들이 상습적으로 도박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심증은 있지만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B중령은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소속 대대 장교와 부사관들에게 동의를 받아 최근 6개월간 월급통장 거래내역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간부 60% 이상이 낸 자료를 대조한 결과 도박한 사실이 적발된 간부 C씨는 지난해 5월 ‘경고’ 조치를 받았다. 이후 C씨는 개인 통장까지 공개하라는 건 인권침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월급통장 거래내역서 제출이 헌법 17조에 명시된 ‘사생활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판단했다. 육군참모총장에게 이를 전파할 것을 권고했다고 1일 밝혔다. 계좌 확인 전에 간부를 대상으로 도박행위 근절 교육을 실시하거나 면담 및 조사를 통해 도박 여부를 확인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박 근절을 위해 군(軍)에서 ‘계좌 확인’ 작업을 벌인 게 처음은 아니다. 2013년 6월 육군 D사단은 육군본부의 ‘장병 사이버 도박 근절대책 추진 지시’에 따라 소속 부사관 월급통장 내역서를 제출받았다. 1577명의 부사관 중 837명이 제출했지만 739명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 중 한 명이 인권위에 진정을 넣었고 그해 7월 인권위는 해당 군 사령부에 사생활 침해 관행을 개선하라고 권고했다.
군이 인권침해 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엄격한 확인 절차를 거치고 있는 것은 도박 문제가 그만큼 심각해서다. 육군에 따르면 도박으로 징계받은 육군 병사는 2010년 237명, 2012년 348명, 2013년 574명 등 매년 늘고 있다. 부사관 이상 간부와 군무원도 2010년 17명에서 2013년 172명으로 늘었다.
주로 휴가 중에 ‘사설 토토’로 불리는 불법 스포츠 도박을 하다 경찰에 적발된 경우가 많았다. 몰래 부대로 들여온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부대 내 컴퓨터로 불법 사이트에 접속해 도박을 하기도 했다. 생활관에서 화투를 치거나 운동경기 결과를 놓고 내기를 하다 걸린 경우도 있었다. 지난 9월에는 억대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복무 중인 군인 3명이 헌병대 조사를 받기도 했다.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도박에 빠진 군장병 얼마나 많길래… 월급통장 내역 제출 지시한 대대장
입력 2015-11-01 2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