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간 딴살림’ 70代 남편 이혼 청구 허용했다… 법원, 유책주의 예외 확대 후 첫 판결

입력 2015-11-01 21:12
결혼생활 파탄 원인을 제공한 유책(有責)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였다. 대법원이 9월 유책 배우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 ‘유책주의’를 유지하면서 ‘예외’ 범위를 확대한 뒤 나온 첫 사례다.

서울가정법원 가사항소1부(수석부장판사 민유숙)는 70대 남성 A씨가 아내 B씨를 상대로 낸 이혼소송에서 1심을 파기하고 이혼을 허용했다고 1일 밝혔다. A씨 부부는 45년 전 결혼했지만 다툼이 잦았다. 부부싸움을 하던 A씨가 텔레비전을 던지는 모습을 장남이 생생하게 기억할 정도였다.

부부는 1980년 협의이혼했다가 3년 뒤 다시 혼인신고를 했다. 그러나 A씨는 혼인신고 후에도 자녀들을 보기 위해 가끔 집에 들렀을 뿐, 곧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했다. 얼마 뒤엔 또 다른 여성과 동거를 시작해 혼외아들까지 낳았다. 그때부터 25년간 A씨는 사실상 중혼(重婚) 상태로 지냈다. 아내와는 장남 결혼식 때 한 차례 만났을 뿐 연락 없이 살았다.

A씨는 2013년 법원에 이혼소송을 냈다. 1심은 “혼인 파탄에 책임이 있는 A씨는 이혼을 요구할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하지 않는 기존 유책주의를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지난 23일 2심은 “부부로서 혼인생활이 이미 파탄에 이른 만큼 두 사람은 이혼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25년간 별거하면서 혼인의 실체가 완전히 사라졌고, 혼인 파탄 책임도 이젠 경중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희미해졌다”며 “A씨가 그간 자녀들에게 수억원의 경제적 지원을 해왔으며 부인도 경제적 여유가 있어 이혼을 허용해도 축출이혼이 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유책주의를 유지하면서도 “혼인생활 파탄의 책임이 이혼 청구를 기각할 정도로 남아 있지 않으면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할 수 있다”며 예외적 사유를 확대했다. 법원 관계자는 “이혼 책임을 따지는 게 무의미해지는 ‘유책성 풍화(風化)론’을 대법원이 인정한 이상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받아들이는 사례는 더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